미디어의 발전은 민주주의의 이행, 공고화 과정과 궤를 같이 합니다. 이미 누차례 강조한 바 있는 웹2.0은 웹계 혹은 미디어계의 민주화라는 대승적 조류를 설명하는 용어로 점차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웹2.0의 철학을 대변하는 참여, 공유, 개방은 21세기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핵심적인 키워드임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최근 미 쇠고기 반대 국면은 미디어 민주화 이행을 촉발시키는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기술적 마케팅적 용어로 전문가들에게서만 통용됐던 웹2.0은 이제 미디어의 민주화라는 그 자체의 존재 목적으로 급속히 질주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수용자들은 웹2.0이라는 용어를 인지하건 하지 않건 간에 그 플랫폼의 참여 가능성, 공유 가능성, 개방성 등을 저울질하다 1차 종착점을 발견하게 된 것이죠. 그곳이 다음 아고라였고 블로그였습니다.

통 상 기술 혁신으로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했을 때 해당 기술이 대중들로부터 수용되기까지는 수십년이 걸립니다. 하지만 이를 앞당기는 모멘텀이 발생했을 때 수용 속도는 상당히 빨라지는 경향을 나타냅니다. 모멘텀에 따라 새로운 기술의 존멸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이 미 봐왔듯이 웹2.0의 철학이 내재된 서비스가 우후죽순처럼 등장했지만, 좀처럼 대중화되는 단계로 이행되지는 못했습니다. 기술의 공급자와 수용자 간의 괴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죠. 기술적 혁신을 체화시키고 학습할 만한 동기와 이슈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미 쇠고기 파동은 1인 미디어 대중화의 모멘텀

이 번 미 쇠고기 파동은 ‘1인 미디어‘의 이 같은 동기와 모멘텀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미디어 민주화에 작지 않은 획을 그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Digg이라는 혁신적 북마킹 서비스가 대중적 소셜 미디어로 자리잡는 데에 패리스 힐튼의 핸드폰 사건이 기여를 했듯, 그리고 오마이뉴스라는 시민참여저널리즘 매체가 대중적 도구로 인식되는데 대선과 노무현이 공헌을 했듯, 미 쇠고기 파동은 1인 미디어의 대중화에 상당한 공을 세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 서 여러 차례 언급한 미디어의 민주화, 혹은 미디어 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미디어 권력의 분산과 미디어 권력의 공유를 지향합니다. 일부 형태의 매체, 일부 언론사에 집중되고 독점돼 있던 미디어 권력이 미디어의 수용자이자 주체인 시민에게 분산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대 다수 미디어 전문가들이 강조하고 있다시피, 이번 미 쇠고기 파동은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독점적 미디어 권력과 1인 미디어 간의 적대적 대결이었습니다. 싸움에서 1인 미디어가 승리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미디어 권력의 분산이 앞으로 이행단계에 접어들 수 있음을 상징합니다.

정치학자는 오도넬은 민주주의의 이행과정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 바 있습니다.

자유화 -> 민주화 -> 사회화

이 를 미디어계에 적용시켜 보면, 웹2.0은 미디어의 자유화 단계에서 미디어의 민주화 단계로 이행시키는 촉매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간 기술적 장벽에 막혀 미디어 수용자들은 참여하기를 망설였죠. 이 장벽을 미 쇠고기 파동이 붕괴시켰습니다.

조희연 교수는 ‘민주주의의 사회화‘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권력을 분산하고 권력의 독점화, 집중화에 반대하면서 권력의 분점, 탈독점을 지향하는 것이다.”

미디어 권력의 분산 탄력 받을까

정 치, 자본 권력의 유착으로 독점적 여론 권력을 행사해왔던 미디어의 시대는 점차 한계를 노정하고 있습니다. 여론을 왜곡해 제도적 민주주의를 정체시킨 독점적 언론 권력들의 시대는 미디어 수용자로부터 신뢰를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1인 미디어 시대의 도래, 풀뿌리 저널리즘 또는 시민저널리즘 시대의 도래는 미디어 권력의 분산을 의미하는 동시에 미디어계 전반의 신뢰를 회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 렇다고 낙관하기는 이릅니다. 독점적 미디어권력, 독점적 정치권력, 독점적 자본권력 삼각 카르텔은 아직 강고한 파워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나타난 민주적 동력이 온라인에서도 위력을 발휘하려면 1차적으로 1인 미디어의 대중적 확산이 전제돼야 합니다. 그리고 대중적 활용 정도도 높아져야 합니다. 미디어 민주주의 시대가 막을 올렸다고 해서 곧바로 안정화, 공고화단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얘기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민 주주의 이행론, 공고화론을 서술한 정치학자들은 최소한 선거가 2회 이상 왜곡 없이 시행될 때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진행되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미디어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첨예한 이슈가 발생했을 때 시민들이 1인 미디어를 주력 도구로 몇 차례 더 활용해야만 미디어의 민주주의가 이행과정에 있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 리나라처럼 미디어의 권력집중이 과잉된 사회에서는 미디어계의 민주화가 사회적으로도 시급한 과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파동으로 잠재력을 인정받고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해서 항상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미디어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더 대중화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p.s.
고 무적인 것은 1인 미디어를 통한 여론의 생산 및 확산 의지가 새로운 기술에 대한 낯설음을 뛰어넘으면서 미디어 수용자들이 한층도 기술 포용적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입니다. 기술 공급자의 홍보나 마케팅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디어 수용자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학습에 의한 결과여서 긍정적입니다. 이러한 학습을 통해 확보된 동력은 앞으로 1인 미디어의 대중화에 가속도를 붙여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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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www.doimoi.net BlogIcon 도이모이 2008.06.09 1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에 집회 나갔는데... 예전에는 대학교 깃말과 노동조합 깃말로 대표 될 수 있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깃말을 들고 나왔는데.. 가장 많이 보이고, 가장 중심축 역활을 하는 깃말들은 모두 다음 아고라 깃말이더군요...

    세상이 뭔가 변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셜미디어와 민주주의의 공통된 과제

 

"대의제 민주주의는 피치자로서의 인민과 선출된 대표 간의 거리를 책임의 원리를 통해 최소한으로 좁힐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대표-책임의 원리를 통한 제도의 작동과 그 정치적 실천이 선출된 정부, 선출된 대표의 이익에 복무하기보다 시민의 선호에 더 근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데모스와 통치자 간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최장집 <어떤 민주주의인가>)

 

‘소셜 미디어’는 민주주의 제도를 미디어의 속성에 적용한 시스템이다. ‘voting’(혹은 Digging) 시스템은 민주주의의 선거 제도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해왔고 ‘대중의 지혜’를 전제로 한 운영 또한 민주주의의 철학에서 빌려왔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알려져있다시피 ‘소셜 미디어’를 지탱하는 철학적 기반은 데모스 즉 인민에 대한 신뢰이다.

 

요컨대 소셜 미디어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대표-책임성 원리를 미디어 편집에 적용함으로써 이상적인 편집 결과물을 구현하려는 끊임 없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 제도와 소셜 미디어의 주체를 이항관계에 따라 대응시킨다면 다음과 같다.

 

플랫폼 : 민주주의 제도

선출된 대표 : 블로거

시민 : 독자

 

“대표-책임의 원리를 통한 제도의 작동과 그 정치적 실천이 선출된 정부, 선출된 대표의 이익에 복무하기보다 시민의 선호에 더 근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소셜 미디어가 이상적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지난한 과제인 대표-책임성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즉 3주체가 모두 절차적 대의민주주의의 구현 조건을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소셜 미디어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과제를 동일하게 필연적으로 떠안을 수밖에 없다.

1. 대표-책임의 원리를 통한 제도가 작동해야 하고

2. 이를 통해 시민과 대표 간의 거리는 좁혀져야 한다

 

소셜 미디어는 현재 투표절차에 참여하는 시민(독자)들이 적어 고심하고 있다. 이 한계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매체는 독자와 블로거 간의 멀어진 거리를 좀체 좁히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예를 들면, 공공적 인식이 결여된 블로거(독단적 정치인)들은 블로깅의 자만족 제고에만 몰두할 뿐 독자들의 선호관계에 무관심하다. 그 반대편에는 독자들의 말초적 선호에 집중하는 포퓰리즘형 블로거(포퓰리즘 정치인)들이 있다.

 

또 높은 수준의 Voting 행위를 획득하지 못한 블로거는 스스로 대표성에 대해 자문을 하는 대신 제도적 측면의 한계를 우선적으로 탓한다.(물론 제도 작동의 오류는 존재한다.) 우중(愚衆)을 비판하며 엘리트적 자만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않았다며 우매한 민중을 탓하는 정치인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

 

이처럼 양 측의 간극이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문제로 인해 지속적인 제도의 업그레이드가 요구된다. 지속적인 제도의 업그레이드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준이 충분히 반영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 몫은 운영자에게 있으며, 간극이 벌어지는 원인에 대한 면밀하고도 세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이 몫을 떠안고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은 '장'(sphere)의 제공이라는 기득권으로부터 부여된다 하겠다.

 

(추후에 보충하겠습니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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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zenguy.org BlogIcon zenguy 2008.01.08 06: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

    실례인줄은 아나,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

  2. Favicon of http://blocho.com BlogIcon 블로초 2008.02.14 1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셜미디어는 오히려 직접민주주의 모델에 더 가깝지 않나요? 제가 요즘 고민하는 주제여서 댓글 달아봅니다. 아울러, 좋은 글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3. Favicon of http://hotwomens2008.net/go/eat-fried-poster-worm BlogIcon eat fried poster worm 2008.03.13 06: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의 위치를 방문한 즐기는!

얼마전 서울에서 친구를 만났습니다. 비교정치학을 전공하고 있지요. 그는 정당 정치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정상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정당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오고 있는 친구입니다.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그 친구에게 선뜻 질문을 던졌습니다. 미디어의 민주화에 대해 관심이 없느냐고 말이죠. 제 질문의 의도는 미디어의 민주화가 정치공간의 민주화를 견인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도 곧바로 제 의도를 간파했던지, 이내 회의적인 시각으로 답변을 하더군요.

“미디어의 민주화가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정치 영역, 즉 정치 제도를 변형시키기엔 힘이 매우 미약하다. 게다가 매스미디어의 파워가 완전히 소멸되지 않을 것 아니냐. 결과적으로 이 사회의 민주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정당 정치의 온전한 뿌리내림이 중요하다.”

이렇게 답변하더군요. 저도 일정 부분 동의하고 있는 터라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블로고스피어에서 벌어지고 있는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욕구, 특히 1인 미디어가 매스미디어의 전적인 영역에 침투해가며 매스미디어 지배시대의 종착점을 앞당기고 있다는 말만 전했습니다.

블로고스피어가 제도 정치를 변형시킬 수는 없을까

이 대화 속에서 제 머리를 문득 스친 것은 블로고스피어(민주화된 미디어의 영역으로서)가 정당 정치의 활성화에 기여를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문제의식이었습니다. 당원과 단절된 정당, 당원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는 한국 정당의 고질적 병폐를 미디어의 민주화가 치유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갈등이 드러나고 갈등이 부딪치는 과정에서 대안이 도출돼 갈등이 해소되는 프로세스가 전제돼야 합니다. 이전의 한국 사회는 국론통합이라는 이유로 갈등이 노출되는 것 자체를 억압해왔죠. 하지만 민주화된 정부가 출범한 이후 이러한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이 용솟음치듯 분출되며 터져 나왔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는 프로세스에 대한 역사적 고민이 부족했습니다. 그저 갈등이 노출되면 모든 것이 풀리리라는 막연한 믿음과 기대만 있었을 뿐입니다. 이제는 아닙니다. 갈등을 해소하는 세련된 과정을 창출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그 대안으로 저는 블로고스피어를 주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블로거뉴스 편집을 담당하는 입장에서 블로거뉴스 안에서 갈등이 노출되고 충돌하고 해소됨으로써 성숙된 민주주의의 상이 찾아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헌데 아직 부족합니다. 분명 블로거뉴스 내부에서 시민 혹은 민중과 정치권력이 만나고 있습니다. 갈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블로거들과 심상정 의원-청와대가 FTA 등을 의제로 치열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러한 과정을 밟지 않습니다. 정치인, 정부, 공공기관들이 홍보 차원에서 블로거뉴스 기자단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정착 블로거들의 목소리와 블로고스피어에서 노출되고 있는 갈등에 적극적으로 답변하고 토론하고 있지 않습니다. 블로거뉴스를 담당한 1주일 정도의 기간 동안 제가 느낀 거라고 할까요.

소극적 홍보에만 그치는 정치인·정부·공공기관 블로거

주체로서 공공기관 블로거가 좀더 적극적으로 블로고스피어에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방적인 홍보로서 블로깅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맞부딪히는 공간과 과정으로서 블로깅에 도전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어쩌면, 우토로나 소말리아 문제와 관련해 외교통상부가 블로그를 개설해 블로거들과 직접 대면하고 갈등하며 토론하는 것이 한층더 높은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첩경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제도의 변형, 수정이 이뤄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블로고스피어는 공론장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공론장 이론의 선구자인 하버마스는 공론장에 대해 “이성의 지배를 원리로 합리적인 토론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참여와 계몽을 이끌어 내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이후의 모순 상황을 차치하고라도 합리적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측면에서 블로거들도 좀더 성숙된 토론 자세를 학습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좀더 진중하게 비판하고 설득하며, 결과를 수용하는 도덕교과서 같은 주문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봅니다.

블로고스피어가 혹은 블로거뉴스가 공론장으로서의 기능을 갖출 수 있도록 편집자들도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블로거뉴스가 공론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여러분의 아이디어를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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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lolololk BlogIcon 아무리 2007.10.16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분께서는 아마도 인터넷블로그가 특히 정치에 있어서 주류언론의 독점적 의제설정, 혹은 무의사결정등의 문제들에 하나의 대안이자 보완방안으로 생각 하시는듯 합니다. (조심스럽게 글쓴분의 논지를 비약하면) 더 나아간다면 현 제도화된 정당정치에서 제대로된 진짜 국민의 이익과 의제가 다루어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하는것도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제 사견으로는

    인터넷 블로그에 희망이 있다면 그것이 정치이 원래의 기능을 정상화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상화된 정치의 기능 즉 각 집단의 이익표출을 공론 시키는데 있어서 "이익" 이라는것이 표출되는 원천의 역할중 하나를 담당 할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인터넷은 이미 정치적으로도 하나의 의미있는 의견의 표출 창구가 되었죠. 또 반대로 정보제공의 창구도 되고요.

    이러한 인풋과 아웃풋의 자유로움은 블로그의 엄청난 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인터넷 블로그에 위험성이 있다면 자칫 건전한 공론의 장이 되지못하고 음해와 비방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글슨분은 이 문제에 다소 교조적인 처방을 제시 하셨지만 이것은 보다 근본적인 처치 불가능한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이용자의 성숙도의 수준의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인터넷에서의 개인은 사회속의 혹은 조직된 네트워크의 일원이 아닌 그야말로 완전히 자유로운 하나의 통제불가능한 사인 이기 때문이죠. 그런면에서 1인 블로그는 이러한 점이 더욱 증폭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파급력이 크다면 그만큼 악용될 소지도 크다고 생각 됩니다.

    결국 이런점들 때문에 인터넷 블로그가 의미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신뢰"를 얻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을듯 합니다. 이미 인터넷의 정보가 그 수용자에서 상당히 신뢰를 잃어가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하버마스를 이야기 하셨는데 담론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은 바로 신뢰이죠.

    인터넷블로그에 절망이 있다면, 미디어의 힘은 결국 그 파급효과 즉 관심도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때, 이에 대해 "정치블로그"는 다른 의견을 가진 "정치블로그"와만 경쟁 하는것이 아니라 원더걸스 블로그, 무한도전 블로그와도 경쟁을 해야합니다. 정치적 무관심을 넘어서 정치 혐오의 시대에 "정치블로그"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의미있는 관심거리가 되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지요.

    자극적인 인터넷의 세상에서 관심을 위해서는 그것이 더 자극적이어야 하지만, 블로거가 강태공이 된다면 블로그는 신뢰를 잃게 되겠죠.

    마치 SWOT 분석처럼 되버렸는데 물론 블로그의 기회와 장점도 많지만 그만큼 위협이나 단점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국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제 개인적인 생각은 글슨분의 친구분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정당정치의 정상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한국 정치의 문제점은 정당이 이익 표출을 위한 공론의 장이 되지못하고 그저 정치 엘리트들의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리는 탓이 크다고 생각 합니다. 블로그가 그 장점을 살려 이에 대한 하나의 보완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것도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2. Favicon of http://wet-girlz-2008.com/big-dick-gay-latin BlogIcon big dick gay latin 2008.03.13 05: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의 친구는 너의 위치의 현재 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