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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01 객관성의 종말과 블로그 저널리즘의 발화 (2)
기자의 객관성 종말

객관성의 종말, 객관성의 종말…. 다시 되뇌이고 입에 담아 봐도 좀체 납득하기 힘든 분들이 많을 줄로 압니다. 관찰자적 시각이 배제된 콘텐트를 과연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느냐라는 의문이 이해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19세기 후반, 20세 초반부터 내려온 저널리즘의 전통이 구축한 ‘객관의 도그마’ 혹은 ‘객관의 이데올로기’에 우리들이 자유롭지 않은 탓이라고 다시 말할 수 있습니다.

저널리즘은 궁극적으로 스토리의 신뢰 제고, 진실의 추구를 목적으로 합니다. 하지만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객관주의 저널리즘은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어쩌면 실패가 예고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사례를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정치부 기자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정치부 기자는 그 존재 자체가 정치현상의 참여자이자 관찰자입니다. 그들의 관찰자의 시각으로 기사를 생산하고 있지만, 정치현상의 참여하면서 정치현상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에게 질문을 하면서, 그리고 사적인 자리에서 정보를 교환하면서 정치인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정치인과의 공적, 사적 교감은 정치현상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비단 정치인에게뿐만 아니라 정치부 기자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글쓰기의 바이어스를 낳는 것이죠. 자기검열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따라서 정치현상을 구성하고 있는 정치부 기자가 객관적으로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객관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다른 부서의 기자도 이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역사학자의 역사를 기술함에 있어 자신의 사관을 배제할 수 없는 경우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주관성이 배제된 객관적 글쓰기는 가능한가

그렇다면 신뢰할 수 있는 콘텐트를 생산하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일까요? 이쯤에서 세계체제론의 권위자 월러스틴 교수의 언급을 참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이 불확실하면 선택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선택을 피할 수가 없다면, 분석과정에서 가치에 대한 분석자의 동의, 선호, 전제가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설사 우리가 의식 층위에서 그런 모든 고려들을 제거한다 해도, 다시 말해 지식활동의 대상 앞에서 도덕적 중립성의 자세를 고집한다 해도, 이런 요인들은 무의식 층위에서 허용할 수 있는 사회담론의 층위에서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이 후자들을 표면으로 떠올릴지라도 우리는 맥락화의 끝없는 퇴행, 즉 정신분석자의 정신을 구성하기 때문에 결코 제거할 수 없는 개인적이며 집단적인 전기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마디로 선과 미에 대한 주장을 포함하지 않는 진리 탐구는 없는 것이다.”(‘지식의 불확실성’, 월러스틴, p.67)


그간 지식의 확실성 혹은 객관성을 유지해온 결정적 요소는 기자의 도덕적 양심, 분석자의 윤리였습니다. 하지만 의식의 층위에서 이를 관리할 수는 있었겠지만 무의식의 층위까지 제어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무의식의 편향성이 작동해 분석과 해석과 글쓰기의 객관성을 흩트려놓는 경우가 있어 왔다는 의미입니다. 월러스틴 교수의 얘기대로 “주장을 포함하지 않는 진리 탐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결론 지을 수 있다는 것이죠.

진실을 찾기 위한 다른 대안은 없나

그렇다면 독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진실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월러스틴 교수는 “욕망(주장)에서 앎(지식)을 분리시키는 것이 불가능함을 받아들일 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더 잘 알게 된다”고 얘기합니다. 즉 주관성과 지식의 기술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을 인정할 때 진실 추구가 더 용이해진다고 풀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를 위해 월러스틴 교수는 2가지가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① 우리는 비난하기보다는 분석함으로써 우리 자신과 타인의 전제를 드러내야 한다.
② 모든 집단적 궤적을 가진 구성원으로 과학공동체를 건설할 필요가 있다.

월러스틴 교수는 학문적 차원 특히 과학의 차원에서 대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를 미디어 분야, 저널리즘 분야에 응용 적용해보고자 합니다.

① 분석적 글쓰기를 통해 자신과 타인의 전제(성향)을 ‘까발려야 한다’
② 여러 분야의 구성원들이 토론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블로그 저널리즘 구현을 위한 플랫폼의 역할

먼 길을 돌아온 것 같은데요. 전 여기서 월러스틴 교수의 2가지 필요를 받아들여 미디어 분야에 적용시켜볼 참입니다.

블로거들의 주관적 글쓰기, ‘자기 드러내기’가 가끔 블로고스피어 내에서 화두가 되곤 했습니다. 객관성의 상실은 곧 신뢰의 상실과 등치된다는 측과 오히려 객관성이라는 허물을 덮어쓰고 은밀하게 주관성을 유포하는 측이 맞서며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일부는 블로고스피어엔 믿을 만한 신뢰할 만한 콘텐트가 없다며, 곧장 회의론자로 돌변하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이 두 측의 싸움은 궁극적으로 블로고스피어의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한 과도기적 전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방식이 더 옳은지’ 정답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블로고스피어는 객관 포장주의에 반대하는 집단의 소통공간이라는 점입니다. 적어도 객관성의 이름으로 주관성(혹은 정파성)을 간사한 방식으로 유포시키는 행위는 발붙일 땅이 없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블로고스피어가 더 신뢰할 만한 공간으로 진화해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여기서 월러스틴 교수의 조언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로 비난보다는 상대를 분석해 전제와 정체성을 드러내보이게 함으로써 생산적 논의를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건설적 토론의 궁극적 곧 진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파성의 전체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토론을 통해 서로의 전제를 확인하고 일부 수정, 수렴함으로써 신뢰할 만한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죠.

둘째, 서로 다른 관심을 지닌 많은 사람들이 지식과 ‘판단’을 공유할 수 있는 즉 집단지성의 positive한 측면을 극대화하는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건 바로 미디어 플랫폼 설계자의 몫이기도 합니다. 관심사가 다양한 블로거들이 더 많이 모일수록 집단지성의 힘은 더욱 강력해질 것입니다. 물론 블로그 저널리즘을 필요로 하는 플랫폼은 좀 더 정교한 로직으로 플랫폼을 구성해야 나가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될 것입니다.

결국, 신뢰·진실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생산단계의) 객관주의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소멸한다거나 배척당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관성의 총합=신뢰’라는 공리가 성립될 수 있는 (유통단계의) 객관주의가 발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등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들이 있겠지만, 이 부분은 플랫폼 설계자와 블로거 간의 긴밀한 상호교감과 시행착오로 충분히 제어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서 없이 독후감 삼아 썼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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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양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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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ot-girls-2008.com/british-jordan-model-picture BlogIcon british jordan model picture 2008.03.13 0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위치는 유익한뿐 아니라 재미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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