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러스틴 교수의 4월 1일자 논평입니다. 파산한 미국 금융그룹 베어스턴스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여기에 '달러화의 위기' 등을 보태 패권국 미국의 위기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월러스틴 교수가 자신의 저서 '미국 패권의 몰락'에 서 기술했던 바와 같이 미국의 헤게모니는 추락하고 있는 듯합니다. 월러스틴 교수는 '앞으로 10년'이 어떻게 될지가 궁금하다고 했는데요. 결국 10년 안에 미국의 위상은 현재와 무척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는 다른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습니다. 극단적 자유주의를 사실상 국가적 이데올로기로 오롯이 세워왔던 미국, 자본주의적 탐욕으로 성장한 미국은 이제 그 탐욕에 되레 잡아먹힐 시점에 처해 있습니다. 탐욕의 결과 중 하나가 바로 서브프라임 사태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버는 돈을 잊고 빚 내서 집부터 사는 소비행태가 낳은 현실이겠지요.

사실 실질소득을 넘어선 지출과 소비, 이는 비단 미 정부뿐만 아니라 미국민들도 당연시해온 행태입니다. 부부가 닮아가듯, 국가와 국민도 닮아간 모양입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확산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러한 철학과 인식 때문이 아닐까요?

미국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습니다. 이미 불어날 대로 불어난 쌍둥이 적자를 감당하기엔 미국은 너무나 많은 돈을 이라크 전쟁에 퍼부었습니다. 밑빠진 독에 물 부어봐야 남는 건 빚뿐이죠. 그런데 국민들까지 빚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금태환제의 폐기로 가치가 하락한 달러를 이젠 금으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더이상 달러를 손에 쥐고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미 재무부 채권이 언제까지 매력적인 수단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요?

아프간 파병을 논할 때가 아니라 지금은 미국이 스스로의 위기를 되돌아볼 때입니다. 부시 대통령이 다른 생각 안했으면 좋겠네요. 미국발 거품의 붕괴는 월러스틴 교수의 예견처럼 미국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을 수 있습니다.



월가街는 정말이지 탐욕으로 굴러간다


Commentary No. 230, April 1, 2008

월가街는 정말이지 탐욕으로 굴러간다

("Wall Street is Really Predicated on Greed")

월 가街는 정말이지 탐욕으로 굴러간다. 내가 아니라, 스티븐 라파엘이 한 말이다. 라파엘이 누군가? 지난 달 파산한 금융회사 베어스턴즈의 전 이사다. 어디서 이런 말을 했을까? 월가의 기관지라고도 일컫는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뷰에서였다. 라파엘이 말하려던 요점은 그럼 뭐였을까? 베어스턴즈가 어떻게 붕괴했는지에 관한 설명(아니면 변명?)이었다. 그는 “어느 회사냐를 떠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했다.

아 닌 게 아니라 그렇다. 이런 일은 어느 회사냐를 떠나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그랬다. 그 사이, 베어스턴즈가 파산으로 치닫는 동안, 이 회사 대표였던 지미 케인즈는 태연하니 판돈을 계속 돌리고 있었다. 탐욕스런 은행가 치고 그렇게 영민하진 못했던 모양이다. 그 결과 그는 소유 재산을 대부분 잃었고, 탐욕으로 굴러가는 또다른 금융회사 JP 모건 체이스는 이에 마치 죽은 고깃덩이를 노리는 콘돌처럼 개입, 끝장을 내버렸다. 아, 첨언하자면, 한 14,000명 규모의 베어스턴즈 직원들이 실직했거나, 머지 않아 실직할 참으로 있다.

자 본주의에는 그럼, 탐욕 빼곤 아무 것도 없을까?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엔 탐욕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탐욕은 굉장히 큰 역할을 한다. 탐욕은 그 정의상 무언가 때문에 다른 무언가를 대가로 치러야 먹힌다. 요즘 들어 월가와 세계 다른 곳에서 상당수 회사들이 파산하는 한편 다른 회사들은 그렇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이 일개 국가로서 거덜이 나고,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은 이유도 그래서다. 미국 스스로 거덜났다고 하지야 않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상 황은 늘 이런 식일까? 아니, 늘 그렇지는 않다. 전체적으로 보면 절반의 시기에만 해당하는 얘기다. 월가와 미국이 어떻게 이런 유별난 재앙이나 다름 없는 코너로 내몰렸는지 살펴보자. 1945년 당시, 미국과 월가 모두에게 시작은 좋았다. 전쟁은 끝났고, 승리로 끝난 전쟁이었다. 미국은 산업 열강 중 유일하게, 전시기 동안 공장을 손상 없이 온전히 유지한 나라였다.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경우 도시는 파괴됐으며, 기아가 실재했다.

미 국으로서는 잘 나갈 수 있는 만반의 여건을 갖췄던 셈이었다. 그렇게 미국은 잘 나갔고, 그것도 아주 잘 나갔다. 세계의 생산을 떠받치면서, 미국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자국에 실질적으로 손상을 입힐 만한 핵전쟁이 일절 일어나지 않도록 얄타회담이라고들 부르는 소련과의 거래도 성사시켰다. 그리고 대내적으로, 거대 제조업체들에서는 이윤(을 위한) 생산에 파괴적인 장애를 일으킬 만한 파업이 일절 일어나지 않도록 거대 노동조합들과 거래를 성사시켰다. 마치 안개가 걷힌 듯 장밋빛 시절이 도래했고, 삶의 표준은 극적으로 치솟았다. 실제로, 전쟁이 끝나고 상당 기간 동안 세계 대부분은 확실히 장밋빛으로 충만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생산과 이윤, 인구―맞다, 여기에 복지 일반에 이르기까지 가장 커다란 팽창이 일어났던 시기였다. 이 시기를 일러 프랑스 사람들은 “영광의 30년”이라고 했다.

좋 았던 것들은 이제 모두 종언을 고할 수밖에 없는 걸까? 안타깝게도, 근대 세계체제가 굴러먹어온 지난 500년 간의 역사를 보건대, 주기적으로 늘 그랬다.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 팽창 와중에 현금을 수중에 넣을 때, 이윤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윤은 여러 선도산업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이뤄지는 독점 여하에 달려 있다. 그러나 (당대의 선도산업이란 위상을 지닌) 제철 공장이나 자동차제조 공장이 너무 많은 나라에 생기면, 과도한 경쟁이 초래되기 마련이다. 경쟁의 미덕을 퍼뜨리는, 당최 이치에 맞지 않는 온갖 구호가 나돌지만, 경쟁은 자본주의/자본가들한테 좋은 게 아니다. 경쟁은 이윤을 잠식한다.

그 리고 이윤이 과다하게 창출될 때, 세계체제는 주기적으로 거듭되는 침체기 중 특정 국면에 들어선다. 이같은 상황이 발생한 건 1970년 언저리였다. 그런 뒤로,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때조차, 또다시 온갖 당치 않은 구호가 나돌았다지만, 사정은 더 이상 장밋빛이 아니었다. 전세계적인 경제침체기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공장들은 (미국은 물론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까지 아우르는) 옛 거점을 빠져나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생산비를 확보하고자 (한국, 인도, 브라질, 대만과 같은) 다른 국가들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철강/자동차산업 생산의 새 입지 마련이라는 측면에서야 괜찮은 조치였을지 몰라도, 옛 생산의 중심지에서 그것은 실업을 뜻했다.

하 지만 공장 철수/이전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이윤창출과 생산이 상대적으로 침체를 맞이한 시기, 그런데도 거대 자본가들이 돈을 벌 방법으론 뭐가 있을까? 그들은 제조업기반 사업에서 금융기반 사업으로 자금을 전환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투기에 발을 담근다는 얘기다. 이렇듯 투기가 발흥하는 시기에, 탐욕은 끝간 줄을 모른다. 우리 앞에 정크본드, 적대적 인수합병, 비우량담보(대출), 헷지펀드, 그 외 별 희한한 이름을 가진 희한한 금융상품들이 선을 보이는 게 다 그래서다. 오죽하면 로버트 루빈 같은 금융계의 거물조차 최근 “liquidity put”이 뭔지 모르겠다고 했을까.

이 이면에는 1970년부터 줄곧 커지고, 커지고, 또 커져온 채무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기업법인들, 개인, 국가가 져온 채무 말이다. 이들이 지금 누리는 것들은 하나 같이 실질 수입을 넘어서 있다. 돈을 빌릴 수 있는 지위에 (그러니까 신용이) 있다면, 흔히들 하는 말로 호사를 누리며 살 수 있다. 하지만 채무에는 조금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일정 시점이 되면 채무상환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당사자는 “채무 위기” 또는 “파산”을 맞이하고, 통화를 보유한 국가인 경우, 환율의 급격한 하락을 겪는다.

이 를 일러 거품이라고들 한다. 풍선을 오래도록 불면, 그게 아무리 좋구나 싶어도 어느 시점에서 풍선은 터지게 마련이다. 거품은 지금 한창 터지는 중이다.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충분히 그럴 만하다. 거품이 실제로 터질 때, 그건 정말이지 고통스런 일이다. 중요한 건, 거품붕괴가 모두에게 고통스럽다고 할 때조차, 보통 다른 누군가보다는 또다른 누군가에게 더 고통스럽게 다가간다는 점이다.

이 때, 가장 고통스러울 게 확실한 건 미국이지 않을까 싶다. 개별 국가로서나, 여기에 귀속해 있는 자본가들로서나, 뭣보다 여기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시민들로서나 말이다. 미국은 중동지역에서 벌여 놓은 패배중인 몇몇 전쟁에다 수십 억 달러도 아니고 수 조 달러를 쏟아붓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알기로, 이제껏 어떤 부유한 나라도 국고에다 수조 달러를 채워넣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그만한 액수를 다른 데서 빌려 써왔다. 2008년 현재, 미국이 지닌 신용은 1945년 당시에 그랬던 것만큼 좋지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채권자들은 악화가 된 달러를 받고 양화를 건네주기는 꺼려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와중에 미국은 베어스턴즈와 같은 전철을 밟을 공산이 있다.

미 국이란 주株를, 이를테면 중국이나 카타르 또는 노르웨이, 아니면 이들 나라들이 연합해 주당 2달러나 심지어 10달러로라도 사들이게 될까? 예컨대 수많은 나라에 주둔한 군사기지들처럼 미국이 지금도 사들이고 있는 고가의 장난감들, 그리고 낡은 장난감들을 대체한다며 주문해둔 저 전투기와 선박, 훌륭한 화기들한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여기저기 줄지어 늘어선 사람들한테는 누가 나서서 빵을 나눠줄까?

다가올 10년 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나도 알고프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 예일대 석좌교수, 사회학
Posted by 몽양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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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aigrirduventre.blogs.fr/ BlogIcon Lecia 2012.01.22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빌어먹을 글을 ! 매우 ! 공개

오랜만에 월러스틴의 논평을 올립니다. 지인이 번역해주었습니다. 1월 1일자니깐 제법 늦었네요. 지인을 닥달해 앞으론 자주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ary No. 224, Jan. 1, 2008


사빠띠스따들이 이룬 것
("What Have the Zapatistas Accomplished?")


1994 년 1월 1일, 멕시코 치아빠스 주에 위치한 산 크리스토발 드 라스 까사스에서 통상 사빠띠스따라고들 하는 사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이 봉기에 나섰다. 그리고서 불과 14년만인 2007년 12월 13~17일에 걸쳐 같은 곳에선 EZLN 주최로 “지구라는 행성: 반체제 운동들”이라는, 이들이 내건 목표들 중 어찌 보면 해묵었다 할 만한 주제의 국제 콜로키엄이 열렸다. 다른 활동가와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이 콜로키엄에 참가했다. 콜로키엄 기간 중에 마르코스 EZLN 부사령관은 서로 연관된 여섯 가지 이야기꾸러미를 펼쳐보였다(온라인에서 내용을 검색할 수 있다).

마르코스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던져왔던 물음은 어떤 의미에서 이렇다―싸빠띠스따들이 이룬 건 뭐며, 치아빠스와 전 세계를 망라한 반체체 운동들의 전망은 어떠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치 않다. 1994년 1월 1일 당시 상황에서 시작해보자. 봉기 시점으로 그날을 택한 건 그날이 바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일이었기 때문이다. 봉기 세력이 이때 내세운 슬로건은 Ya Basta!(이제 그만!)였다. 사빠띠스따들은 애초부터, 부정의와 능욕에 맞서 지난 5백 년 동안 이뤄져온 저항과 자신들의 자치 요구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전지구적으로 진행중인 투쟁과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음을 거듭 밝혔다. NAFTA는 그런 신자유주의·제국주의의 상징이자, 그 일부였던 셈이다.

돌이켜 보면, 치아빠스는 멕시코 내에서 가장 궁핍한 지역으로, 지역인구 중 이른바 선주민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곳이었다. 16세기 경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으로 카돌릭 주교로는 처음 치아파스에 왔던 바르톨로메 드 라스 까사스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동등한 처우를 받고자 누려야 할 여러 권리를 (카돌릭 교회와 스페인 왕정권력 앞에서) 결연히 옹호하는 데 헌신했다. 그로부터 1994년에 이르기까지, 까사스가 옹호했던 권리들을 인디언들이 제대로 누려본 적은 없었다. EZLN은 다른 방법들을 시도하기로 했다. 이렇게 이뤄진 시도는 그럼 성공적이었을까? 이들이 벌였던 운동의 효과는 세 가지 측면과 관련 속에서 살펴봐야 한다. 즉, 첫째, 정치의 장으로서 멕시코라는 공간, 둘째, 전체로서의 세계체제라는 장, 셋째, 반체제 운동들에 대한 이론화 작업과 관련해서다.

먼저 멕시코를 보자. 하나의 전술로서 채택된 무장봉기는 열이틀이 지나 보류됐다. 그리고 그 이후로 더는 채택되지 않았다. 사빠띠스따 자치공동체에 대한 멕시코 연방군 내지 우익 준군사조직들의 대규모 공격이 없는 한, 그리 하리라는 건 명백하다. 반면, 멕시코 연방정부와 맺었던 정전 협정(선주민 꼬뮤니티들에 대한 자치권을 보장한다는 이른바 ‘산 안드레’ 합의)을 정부가 실행에 옮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2001 년 사빠띠스따들은 수도를 최종 목적지로, 멕시코 전역을 누비는 평화로운 장정에 나섰다. 그럼으로써 멕시코 의회가 산 안드레의 합의의 핵심을 입법화하도록 압박하려는 바램에서였다. 장정은 장관이었지만, 멕시코 의회는 관련 법안 상정에 실패했다. 2005년, 사빠띠스따들은 “다른 캠페인”을 전개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바와 대체로 유사한 여러 목적을 지닌 다른 지역 그룹들과 연대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 또한 이목을 끌었지만, 멕시코 정부가 실제로 보여온 정치적 행보를 바꾸진 못했다.

적 절하게도, 사빠띠스따들은 2006년 중도좌파 후보로 나선 안드레스 마뉴엘 로페즈 오브라도르를 대통령으로서 추인하길 거부했다. 오브라도르는 당시 명목상의 당선자가 된 극보수주의자 후보 펠리페 칼데론과 팽팽한 선거전을 치른 인물이었다. 사빠띠스따들의 이같은 행동은 멕시코 안팎을 떠나 그들에게 동조하는 이들 사이에서 상당한 논란을 촉발했는데, 이들 중 다수가 생각하기에 그런 행동은 오브라도르의 낙선이라는 댓가를 수반하기 때문이었다. 사빠띠스따들의 이같은 입지는 선거/의회정치가 자신들한테 득될 게 없다는 깊은 통찰에서 유래했다. 이제껏 그들은 브라질의 룰라에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에 이르기까지,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집권중인 모든 중도좌파 수반들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이들을 집권으로 이끈 운동들이 모두 하향식으로, 다수의 피억압 대중한테는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바뀐 게 없음을 보여줬다는 까닭에서였다. 사빠띠스따들에게서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호평받았던 정부로는 쿠바가 유일한데, 그들이 보기에는 쿠바 정부만이 진정으로 반反자본주의적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멕시코 내에서 사빠띠스따들은 연방군에게 포위된 채 끊임 없는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잘 굴러가는 자율적인 선주민 꼬뮤니티들을 어렵사리 구축해왔다. 이들 꼬뮨들에게서 보이는 정치적 세련미와 결단력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멕시코 내의 중대한 정치적 변화 없이 지속될 수 있을까? 특히, 자신들 땅에 대한 선주민 인디언들의 통제권획득 압력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 속에서 말이다. 이는 아직 풀리지 않은 쟁점이다.

지 구적인 차원의 구도는 이와 다소 다르다. 1994년에 일어난 사빠띠스따 봉기는 전세계 반체제 운동들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됐다. 이 봉기가 1999년 세계무역기구(WTO) 회의를 무산시킨 시애틀 시위에 중대한 전기를 마련해줬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데, WTO 회의는 이후로도 재개되지 못했다. 오늘날 WTO가 가사 상태에 빠진 거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대체로 빈곤한) 남과 (대체로 부유한) 북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결과로서 WTO 스스로 알게 됐다면, 그 공로는 상당 부분 사빠띠스따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시애틀 집회/시위는 다른 한편으로 2001년 개최된 세계사회포럼을 태동시켰고, 이 포럼은 세계 반체제 운동 진영이 만나는 주요한 회합의 거점으로 자리잡아왔다. 사빠띠스따들은 자신들이 무장 세력이라는 기술적인 이유를 들어 한 번도 포럼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포럼에서 그들은 영감의 진원이자 하나의 아이콘으로서 그 위상을 부여받았다.

사 빠띠스따들은 애초부터 자신들의 목표와 관심사가 세계를 통괄하는 것(그네들 고유의 표현으로는 우주를 관통하는 것intergalactic)이라고 천명하는 가운데, 세계 각지에서 진행중인 반체제 운동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한편 그 운동들로부터 자신들에 대한 지지를 적극 호소해왔다. 이같은 행보는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EZLN에 대해 범세계적으로 이뤄졌던 지지가 근래 들어 피로감에 시달려왔다면, 2007년 12월에 열린 콜로키엄은 풀죽은 동맹에 생기 불어넣으려는 시도였던 셈이다.

그 러나 여러 모로 봤을 때, 사빠띠스따들이 한 가장 문제적이면서도 중요한 공헌은 이론(화)의 영역에서 있어왔다. 마르코스 부사령관이 12월에 한 여섯 가지 이야기 중, 첫 번째 이야기를 온통 사회과학에서 이론화 작업이 지닌 중요성에 할애했던 건 놀라운 일이었다. 세계를 분석하는 방법에 대해 사빠띠스따들은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무엇보다도 그들은, 오늘날 세계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근본적으로 이 세계가 자본주의적이란 데서 연유하며, 중요한 건 이런 세계를 바꾸는 일인데, 여기엔 그들이 주장하는 바, 진정한 투쟁이 필요하리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주장을, 사빠띠스따들이 처음으로 했다는 얘길 하려는 건 물론 아니다. 그럼 그들의 얘기는 종래의 주장과 어떤 점에서 다를까? 그들은 1968년 혁명 이후 부상한 시각을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다. 이 시각인즉슨, 구좌파가 행해온 전통적인 분석들은 도시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와 관련된 문제와 투쟁에만 방점을 찍으려 했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협소했다는 것이다. 마르코스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벌여온 투쟁들에 대해 이야기 한 꼭지를 다 채웠다. 또다른 꼭지에서는 현 세계의 농업노동자들이 토지에 대한 재량권을 지니는 일이 얼나나 중요한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매우 놀랍게도 그는 “중심도, 주변도 아닌”이란 제목으로 몇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권력을 논하든 지적 분석을 행하든 간에 이것 혹은 저것에 대해 우선성이 있다는 발상(법)을 거부하고 있었다. 사빠띠스따들이 줄곧 주장해온 바, “모든” 피억압 집단들의 권리를 위해 이뤄지는 투쟁은 동등한 중요성을 지니며, 그래서 투쟁은 각자 선 모든 자리에서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반체제 운동들 자체가 내적으로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mandar obedeciendo"라는 슬로건은 이런 뜻을 함축하는데, 번역하자면 “자기가 이끄는 이들의 목소리와 바램으로 이끌라”가 되겠다. 말은 쉬워도 실제로 행하긴 어려운 얘기지만, 이는 좌파 운동들이 그간 보여온 종적인 조직편제에 반대한다는 일종의 외침이이기도 하다. 사빠띠스따들이 상이한 운동들 간의 관계에서 “횡적 결합”을 추구하는 건 바로 그래서다. 이들의 행보에 동조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그들이 국가권력 장악에 대해 줄곧 반대해왔다고 말한다. “차악”의 수단으로 국가권력을 전취하는 데 대해 굉장히 회의적이긴 하지만, 그들은 쿠바를 거론했던 경우가 그렇듯 기꺼이 예외를 상정해 두고 있기도 하다.

사빠띠스따 봉기는 성공했던 걸까? 유일한 답은 “프랑스 혁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죠?”라는 질문에 (전 중국공산당 총리) 저우언라이가 했다지만, 사실 여부는 의심스런 다음의 답변으로 갈음해야지 싶다.

“답하기엔 너무 이른 질문이군요.”



이매뉴얼 월러스틴
/ 예일대 석좌교수, 사회학
Posted by 몽양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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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 부동산 통계


<매일경제> 에서 퍼왔습니다.

건설업계가 또 들썩이고 있습니다. 언론은 미분양 물량이 근 8년래 최고치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정부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아우성입니다. 도급순위 191위인 세종건설이 부도를 냈다며 얼른 규제를 풀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건설업체 살려주지 않으면 마치 나라가 부도날 것처럼 시끄럽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최근까지 한국 언론은 노무현 정권 들어서 공급 물량이 줄어들었다며 핏대를 세웠습니다. 주택가격 상승이 공급 부족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이에 비례해 미분양 물량은 늘어났습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해서 가격이 올라간다는 진단과는 아귀가 안 맞았죠.

그러더니 수도권의 공급 부족이 문제라고 비켜갔습니다. 수도권으로 인구가 계속 유입되고 있기 때문에 수도권에 대한 공급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도권도 미분양 물량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8월 수도권 미분양 물량은 전월 대비 1411가구가 늘어났습니다. 대체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주류 언론의 공급 부족론 타당한 진단인가?

근래 몇 년간 폭등한 아파트 가격을 잡기 위해 업계 측은 공급확대론을, 시민단체 측은 가수요 억제론을 펼치며 팽팽하게 대립했습니다. 정부는 이 두 가지 정책을 병행했지요. 그 때문에 양측으로부터 비슷한 총량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공급확대론의 근거는 김대중 정부 때부터 줄어든 연간 공급 물량이었습니다. 특히 규모를 늘려가려는 수요에 맞춰 중대형 물량의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소형 물량 공급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2005년 수도권 공급물량은 19만8000호에서 2006년 17만2000호로 줄어들었습니다. 이것이 2006년 가격상승의 주범이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가수요(투기수요) 억제론은 주택가격 거품론에 기반하고 있었죠. 실수요 위주로 주택시장을 재편하기 위해 시민단체 측은 다주택자에 대한 과세를 강화(종부세, 양도세 등)함으로써 상대적 공급물량을 늘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주택자가 주택을 팔면 수십만 가구가 시장에 쏟아진다는 논리였습니다.

일단 저는 투기수요 억제론 쪽의 입장을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로 공급 물량을 충분히 늘여갔음에도 좀체 주택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분양가가 주범이었습니다. 주변 시세에 따라 분양가를 책정하는 탓에 분양가가 떨어질 리가 없죠. 주택업체의 공급 곡선과 실수요자의 예산선이 접점을 찾지 못하니 실수요자가 다가가지 못할 수밖에요. 이를 투자 혹은 투기수요가 매워왔던 형국이었습니다.

제동이 걸렸습니다. 분양가상한제가 그 원인이었습니다.

분양가 인하→수요증가→공급확대로 이어지는 연역적 공급론이 아니라 공급확대→가격 하락 →수요 증가라는 귀납적 공급론에 늘 기대고 있습니다. 건설경기에 목숨을 걸고 있는 언론도 동조했지요. 그러니 정상적인 공급론이 자리잡을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왼쪽 그래프를 보시기 바랍니다.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서 미분양 물량이 늘어났지만 가격이 떨어진 곳은 부산, 대구, 광주, 대전, 강원, 충북 정도입니다. 미분양 물량이 한 달새 1300여호나 늘어난 경북, 1411호가 늘어난 경기도도 모두 가격이 올랐습니다. 특히 가격이 많이 올랐던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아파트 가격을 떨어진 곳은 손꼽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공급확대론은 설득력이 있을까요? 확대해서 주택 가격이 떨어질 수만 있다면, 또 그 가격이 실수요자들이 과도한 대출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규모라면 공급 확대론에 찬성할 것입니다. 실수요자의 예산선과 만나지 않는 공급은 무의미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가격은 왜 안 내리고 부도만 낼까?

왜 세종건설은 부도를 냈을까요? 정부는 분명 지난 4월 주택건설업체의 이윤율을 6.5% 선까지 보장해준다고 선언했습니다. 상장업계 평균 이윤율을 감안한 수치입니다. 그럼에도 세종건설은 부도를 냈습니다. 왜 일까? 6.5%로는 벌어먹기 힘들다는 얘기가 아닌가 합니다.

이럴 바에 차라리 부도 내고 현 시점에서 사업을 정리하는 게 남는 장사일 수도 있습니다. 분양가를 내려서 이윤율을 까먹을 바엔 부도 내고 사업 접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벌 만큼 벌었고 앞으로 부동산 시장이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사업을 접는 게 낫다는 얘기겠지요. 부도 내고 청산해도 부도액을 상쇄할 만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면 밑지지는 않겠죠. 건설경기가 어려운 지방업체일수록 이러한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당장 일자리 문제를 걸고 나올 것이고, 다시 주택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할 것입니다. 그때 다시 건설업체를 창업하면 될 일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죠. 네트워크가 끊어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중소규모 건설업체는 기본적으로 꾸준한 일거리가 없으면 도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술개발을 하기엔 자금이 부족하거나 철학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 건 대박 터뜨리고 정리해도 나쁜 사업은 아닙니다. 때문에 업종 전환을 하기도 하죠.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간과하고 무작정 다시 건설경기 침체를 우려하며 과도한 규제 완화에 나서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다시 공급확대론을 들먹이며 미분양 물량을 늘이는 우를 범해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분양가상한제 시행 이후 주택가격 추이를 살펴본 뒤, 실수요자 위주로 주택산업이 재편되면 그때 규제를 탄력적으로 적용해도 될 일입니다. 성급하게 건설경기 부양론을 뿜어내는 언론들의 호들갑에 우왕좌왕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다른 의견이 있으면 기다리겠습니다.
Posted by 몽양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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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차이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엄연히 다릅니다. 시장경제(Market system)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합니다. Ryan P. M. Allis의 저서 ‘The History of the Market System’에 따르면 시장경제가 창조된 중요한 사건은 신석기 시대인 B.C. 12000~10000년 경에 발생했습니다. 시장경제의 초기적 형태가 발견된 것은 B.C. 6000년 경입니다.

여기서 시장경제라 함은 상품이나 서비스의 교환이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곳 혹은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한국의 역사를 들여다보더라도 시장경제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발화돼 운영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시장에서의 국가 간 거래도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갤브레이스 교수는 시장의 역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시장은 적어도 화폐가 발명된 이래 인간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처음 화폐가 발명된 곳은 기원전 8세기 리디아로 알려져있다. 시장은 존경받을 정도로 오랜 기간 존재해온 것이다. 예전의 소련과 여태껏 공산주의 중국으로 불리는 나라까지도 포함한 모든 나라에서 시장은 지대한 역할을 했다.”


반면 자본주의는 근대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인류의 부산물입니다.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계체제분석의 거장 월러스틴이 설명한 대로라면 대략 15~16세기에 출연한 근대적 경제시스템이 자본주의입니다.

마르크스가 정의하는 자본주의는 노동력의 상품화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그 모태로 합니다. 인간의 노동(노동력)을 교환가능한 상품으로 만들어 착취(잉여생산을 위한)라는 과정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일련의 경제시스템이 자본주의인 것이죠.

좀더 정갈하게 표현하자면

“자본가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바탕으로 노동력 상품화와 독점적 행위를 통해 잉여(이윤)이라는 형태의 불로소득을 발생시키는 특수한 형태의 시장경제이자 사유재산제도”(PEPE)인 것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봉건사회 붕괴 뒤 유럽에서 출현한 시장경제의 한 부류인 셈이죠.

월러스틴 교수의 해석은 약간 다릅니다. 그는 그의 사상적 스승인 브로델의 정의를 일부 받아들여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독점이므로 자유경쟁을 원리로 하는 시장과는 다른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즉 시장경제를 지배하는 독점이 바로 자본주의인 것이죠.

월러스틴 교수는 기축분업으로서의 자본주의가 출현한 것은 대략 16세기경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그의 지적 스승인 브로델은 13세기께라고 말합니다.(삼층도식으로서의 자본주의 모델)

결론적으로 시장경제는 이윤의 축적을 불가능하게 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백승욱 교수는 이윤의 축적은 시장경제 상부구조로서 인위적인 독점이 형성됨으로써 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시장경제의 독점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는 길어야 50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 대안은 없는 것일까 대안을 채택하지 않는 것일까?

자본주의는 수없이 반복되는 경기침체의 사이클을 경험하면서 여러 변형태를 생산해왔습니다. 한때 보정되며 자본주의의 본질이 흔들리는 ‘존재의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급주의 경제학이 생명수를 공급함으로써 자본주의는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독약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세계화와 시장의 독점을 본질로 하는 자본주의로 하여금 마침내 제대로 제 페달을 밟게 했기 때문입니다.

시장경제는 본질적으로 수요 중심의 개념입니다. 갤브레이스 교수는 시장은 ‘소비자 주권’과 동일시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시장경제의 본질을 공급주의 경제학이 공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의 역사적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은 시장경제의 본질을 파괴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고 봅니다. 매우 위험한 도전을 감행한 셈이죠.

월러스틴 교수는 역사적 자본주의가 붕괴의 위기에 처한 3가지 징후를 자신의 저서에 쓴 적이 있습니다.

① 세계경제에 걸친 실질임금의 장기적 상승
② 비용을 제도적으로 외부로 돌리는 데서 초래된 환경의 점증적 파괴
③ 세계체제의 민주화가 야기한 교육, 보건, 평생 최저수입 국가 부담의 대폭 증가와 그로 인한 국가 재정의 위기


역사적 자본주의의 첨병이랄 수 있는 미국만 보더라도 위 3가지 징후가 진하게 나타나죠. 이러한 한계, 독점적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수없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정책결정자에 의해 부정됐고 외면 받았습니다. 대안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안을 받아들이는 결단이 없어서라고 봅니다. 오히려 메카시적 접근으로 대안을 체제부정세력으로 몰아넣어 사회적으로 학살하는 잔인함도 보였죠.

3. 시장경제를 부정하자는 얘기인가?

제가 앞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건 어불성설이 됩니다. 시장경제는 인류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한 제도이고, 자본주의 체제 국가건 사회주의 체제 국가건 간에 존재하는 인류의 행위공간이자 수단입니다. 때문에 시장경제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 되지요.

제가 비판을 가하고자 하는 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일시하도록 ‘보이지 않는 사고’를 키운 자본주의 기득권 집단의 교묘한 프로파간다입니다. 시장의 역사와 자본주의의 역사를 등치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진리성, 항구성을 강조하려는 기만은 더 이상 유지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4. 무엇을 겨냥한 것인가?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위집합인 역사도 생명입니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시들고 죽습니다. 자본주의 또한 역사적 용어이며 개념인 탓에 소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자본주의의 역사성에 대해 좀더 깊게 주지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른바 시장경제신봉자(실제론 편향된 자본주의자)들은 이 사실을 전면 부정합니다. 자본주의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순간 어떤 대화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봉건사회 한 복판에 살던 그 누가 봉건사회가 붕괴될 것이라고 예견했겠습니까? 하지만 역사적 체제로서 봉건사회는 붕괴했고 역사적 자본주의 그 자리를 대체했습니다.

지금 자본주의는 심각한 위기 국면에 처해 있습니다. 양극화라는 최악의 상황을 인류에게 선사한 자본주의, 이제 그 이후의 시대를 상상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웹2.0의 철학(참여, 공유, 개방)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정반대의 힌트를 얻을지도 모르겠구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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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라는 사기의 역사

정치경제학강의 2007/08/12 23:44 몽양부활 혹시 여러분은 시장경제, 시장체제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경제학을 전공한 저조차도 그 유래에 대해 깊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의 다른 말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현대 제도학파 경제학의 거장이셨던 갤브레이스 교수가 아니었다면 전 시장경제라는 표현의 탄생 이모저모를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최근 장상환 교수가 번역한 저서 ‘경제의 진실’에서 자본주의라는 악명 높던 이름이 시장경제라는 학구적이고 온화한 표현으로 전환된 정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었습니다.

“그후 미국에서 자본주의의 평판에 먹칠을 한 사건들로는, 플로리다의 부동산 투기, 기업과 산업계의 커지는 발언권, 그리고 1920년대 후반의 과열된 주식시장 등을 들 수 있다. 마침내 1929년에는 주식시장 대폭락을 시작으로 10년이란 기나긴 세우러 동안 세계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미친 대공황이 발생했다.

자본주의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불완전한 체제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 셈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자본주의를 대체할 온화한 이름을 찾으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중략) 따라서 시장체제(Market System)라는 상당히 학구적인 표현이 나오게 되었다.“(경제의 진실, p 25)


과도하게 편향된 시장주의자들, 이른바 시장신봉자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턱턱 막히는 지점이 바로 ‘시장의 해석’ 부분입니다. 시장과 인류는 떼어낼 수 없는 관계이고, 시장은 인류가 교환(화폐를 통한)이라는 행위를 하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오랜 역사성을 지닌 제도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따라서 시장경제는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함께 해왔다고 강조합니다. 그게 바로 시장경제이므로 시장경제를 부정한다는 것은 문명화된 인류의 역사를 거부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강변합니다. 시장경제는 부인해서도 부정할 수도 없는 진리와도 같은 지위라고 그들은 여깁니다. 그렇게 교육받아 왔으니 그렇게 인식할 수밖에 없지요.

그때마다 솔직히 반박을 할 수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시장의 존재와 자본주의의 존재를 동일시해버리는 순간, 역사 속에 존재했던 그 어떤 경제시스템도 바로 그 역사 속에서 부정되고 말죠. 인류의 역사에 존재했던 유일한 경제시스템은 자본주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시장경제, 시장체제이라는 용어가 자본주의 400~500년의 긴 역사 속에서 이제 막 청년기에 접어든 용어에 불과하다는 걸 과연 시장 신봉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네요. 자본가들의 교묘함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됐습니다. 그래서 갤브fp이스 교수가 ‘사기’라고 평했는지 모르겠네요.
Posted by 몽양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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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et-womens-2008.com/abuelos-desnudos BlogIcon abuelos desnudos 2008.03.13 0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는 아름다운 웹사이트가 있는다!

  2. Favicon of http://blondbikiniocean.net/vids/gay-stores BlogIcon gay stores 2008.05.23 0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너를 위치! 감사하십시요.

  3. Favicon of http://amyhiresfilms.net/wet/titanic-sized-tits BlogIcon titanic sized tits 2008.05.23 05: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걸출한 디자인! 좋은 디자인.




이정식 교수가 몽양 60주기를 맞아 발표한 논문입니다.

"위에서 본대로 여운형과 공산당의 관계는 적대적이었으나 몽양은 여전히 민전(民戰) 의장단 회의에 참가하고 있어서 기이한 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47년 4월 16일 정로식, 허헌, 김원봉, 홍증식, 이기석(李基錫)이 참석한 민전(民戰) 의정단 회의에서의 여운형의 발언은 그의 시국관과 선택을 나타내고 있어서 우리의 관심사가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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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양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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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imongyang BlogIcon 들꽃 2007.12.03 0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몽양부활님 감사합니다.
    제가 수작업으로 이 내용들을 제 블로그 몽양 여운형 메뉴에 실었는데
    이렇게 작업하셔서 좋은 자료가 있었군요.

    하지만 저는 보람으로 생각하겠습니다.^^'
    파일을 허락받지 않고 제 블로그에 붙여놓았는데
    그 대신 출처를 밝히고 클릭하면 바로 이곳으로 올 수 있도록
    링크를 해 놓았습니다.

    저도 몽양선생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몽양부활이란 닉을 보니 무척 반갑고 기쁩니다.^^"

    좋은 날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Favicon of https://dangun76.tistory.com BlogIcon 몽양부활 2007.12.11 2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는 후배로부터 받은 발표문입니다. 더 많이 공유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말이죠. 몽양 선생과 관련한 좋은 정보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3. Favicon of http://hot-girlz2008.net/asian-ladyboy-clip BlogIcon asian ladyboy clip 2008.03.13 0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대한 위치 축하!경이롭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