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국내 최고의 블로그 미디어, 야구타임스가 베일을 벗었습니다.

지난해 12월 29일 야구타임스의 상표 등록을 마친 지 1달 만입니다. 블로그 미디어 창간에 '올인'하셨던 손윤님, 김홍석님이 아니었다면 오늘 야구타임스의 프론트페이지는 아마 태어나지 못했을 것 같네요.

저도 다음을 그만두고 태터앤미디어로 넘어와 시작한 첫 사업이었던 만큼 심혈을 기울이고 박차를 가했답니다. 상표등록 절차도 몰라서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도 했죠. 특허청 공인인증서 등록 때문에 고생도 좀했고요. 정기간행물 등록에 대해서도 까막눈이었습니다.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대리인이 등록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한마디로 행정 실무에 문외한이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였답니다. 야구타임스에 어떤 디자인이 어울릴지, 한국형 블로그 미디어는 어떤 디자인이 필요한 건지, 또 어떤 플러그인이 필요하며 홍보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하나하나가 모두 하루 이틀에 풀릴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더군요. 편집자가 손쉽게 기사를 배치할 수 있도록 플러그인을 새로 개발하는 작업도 시간을 요하는 이슈였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조금씩 노하우가 쌓여간다는 걸 느낍니다. 이미 2호, 3호를 준비하고 있는 터라 한결 더 신속하게 블로그 미디어 창간을 준비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블로그 미디어 창간에 나선 전문가 블로거들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고 계셔서 제2호, 제3호 탄생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무엇보다 블로그 미디어를 이해시키는 작업이 참 어려웠습니다. 블로그로 언론사를 만든다는 개념이 일반인들에겐 쉽게 다가오지 않았던 탓입니다. 그리고 태터앤미디어와 무슨 관계인가에 대해서도 선뜻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블로그 네트워크 미디어라는 비즈니스가 일반인에겐 그만큼 생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듣보잡' 취급하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오늘 야구타임스의 베타 버전 오픈을 가장 많이 도와준 분들은 전통 언론의 기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태터앤미디어의 도전적이고 신선한 실험에 주목을 해줬습니다. 블로거가 블로그 기반의 언론사를 창간한다는 사실에 상당히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기사화에 나서줬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독자들에게 야구타임스의 탄생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기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 전해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저널리즘의 질을 높이기 위해 블로거와 기자가 선의의 경쟁을 펼치게 된다면 한국의 언론계는 훨씬 신뢰 받는 영역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야구타임스의 출범으로 한국의 스포츠 저널리즘이 한 단계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제가 가장 집중하는 작업은 블로그 미디어가 저널리즘에 기여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니깐요.

앞으로 야구타임스가 프론티어가 되어 블로그 네트워크를 국내에 뿌리내리는 데 큰 기여를 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전도사가 될 것이고요. 야구를 사랑하는 많은 독자분들도 야구타임스에 많은 애정을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오늘 정말 뿌듯한 날입니다. 기분이 너무 좋네요. 다들 행복하세요~

P.S.

몇몇 분이 한국에서 블로그 미디어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에 대해 글을 써주셨는데요. 다른 분들의 생각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야구타임스를 비롯해 앞으로 여러 블로그 미디어가 태터앤미디어에 의해 탄생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 블로그 미디어가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히기 위해 어떤 점들이 보강되고 어떤 전략적 포인트에 주목해야 하는지 여러분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Posted by 몽양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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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루덴스 2009.01.29 2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구타임즈가 선도적인 위치에 있는 만큼 잘 해주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론, 이런 1인 미디어형, 일종의 시티즌 리포터형 미디어는 하니리포터, 오마이뉴스, 디지털특파원(현 뻑가뉴스), 미디어다음 통신원(블로거뉴스 전신), 블로거뉴스, sbs유포터 등을 경험해 왔습니다만, 1인 미디어 툴로서의 블로그의 존재는 가장 독보적인 존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야구타임즈으로 한정해 본다면,,일단, 기존매체의 기자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기획형 콘텐트'들이 많아야 한다고 봅니다...또한, '독자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살아있는 야구기사,,,그리고 기존매체들이 지면의 한계나 매너리즘으로 인해 미처 짚어보지 못하는 쉐도우 분야에 대한 접근기사도 필요하지 싶습니다.

    아무쪼록,,야구타임즈의 선전을 기원해 봅니다..

    • Favicon of https://dangun76.tistory.com BlogIcon 몽양부활 2009.01.30 10: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콘텐트의 차별성은 관건 중의 관건입니다. 야구타임스의 내용을 채워주시는 두 분이 아마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믿고요. 기존 언론과는 차별화된 매력적인 콘텐트와 독자와의 개방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새롭게 포지셔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2. Favicon of https://highconcept.tistory.com BlogIcon 하이컨셉 2009.01.29 22: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생하셨습니다. 원래 제일 처음하는 사람은 맨 땅에 헤딩하면서 엄청 고생을 하게 되지요 ...

    오늘 야구타임즈가 오픈하는데 고생하신 김홍석님, 손윤님 그리고 몽양부활님, 님들은 오늘 역사를 하나 새로 쓰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노고를 치하드립니다.

  3. Favicon of http://blog.daum.net/yama1417 BlogIcon skin science 2009.01.30 0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먼저 축하드립니다.
    김홍석님, 손윤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몇번 연락을 통해 조금 알게된 몽양부활님의 노력이 빛을 발했네요.^^
    개인적으로 블로그와 야구를 너무나 좋아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성공적으로 첫발을 내딛은 만큼 이제는 승승장구 블로그미디어의 선두를 이끌어주시길 응원합니다.
    이제는 정말 블로거들의 파워가 느껴지네요. 제가 얼마전 블로그 공부를 시작하면서 읽은 책중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조만간 블로그에 대해 매각 또는 m&a를 심각하게 고려해야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다만 아무도 그것을 모를 뿐이다."
    이 문장이 현실이 되는 첫발이 아닌가 싶네요.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뒤에서 조용히(?) 응원하겠습니다.

  4. Favicon of https://tvexciting.com BlogIcon 이종범 2009.01.30 14: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하드립니다. 연일 야구타임즈가 화제네요. ^^b 블로고스피어내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획기적인 도전과 아이디어라 생각합니다. 저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화이팅! ^^

  5. Favicon of https://jasonsoul.tistory.com BlogIcon 제이슨소울 2009.02.03 17: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포럼에서 PT 잘 들었습니다.
    배울 것이 정말 많은 시간이었어요.
    야구타임즈의 발전을 위해 저도 늘 응원할께요^^

  6. 소년가장 2009.05.03 2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소년가장 입니다!-
    -도움의 글을 올립니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기상! 기상! 아침이다! 빰빠라빠바밤!”
    오늘도 어김없이 요란스럽게 울려대는 알람시계를 잠에서 덜
    깨어 비몽사몽인 채로 손을 더듬어 스위치를 껐습니다.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씻고, 교복을 갈아입고, 밥을 먹고 학교
    갈 준비를 마치면 아침 6시 45분입니다. 학교가 그렇게 멀리
    있지는 않지만 아침 일찍 학교 가는 것을 즐기는 지라 언제나
    저의 등교 시간은 이릅니다.
    아직은 이른 시각이라 저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아직도
    꿈나라에 있습니다.
    하지만 전 왜 이렇게 싱글벙글 즐거운지 모르겠습니다. 피곤함이
    없진 않지만 왜 이렇게도 마음이 즐겁고 행복한 지. 그건 아
    마도 지금의 저에게 가족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겉으로는 부유했지만 안으로는 한없이 궁핍한 그런 불행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고급스러운 옷과 장난감들로는 부모의 사랑을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언제나 언성을 높이시며 크고 작은 부부싸움을 하셨습니다. 그럴 때 마다 언제나 방 한구석 침대 모퉁이에 동생과 함께 머릴 손으로 감싸며 움츠려 있어야만 했습니다.
    무섭기만 하였습니다. 두렵기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저는 겁을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린 저에게 부모님의 불화(不和)에 내성이 생겼던 겁니다. 그런 저는 마음이 착하고 여린 여동생과는 달리 반항을 하고, 고집을 부리고, 친구를 때리는 등 못된 아이로 모습이 변해갔습니다. 그때가 제 나이 고작 9살이었습니다.
    그런 중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정은 깨어졌고, 저와 여동생 그리고 엄마 이렇게 세 사람만 가정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엄마는 발버둥치며 저희와 살아가려고 밤낮으로 일하러 다니시며 가정을 꾸려나가셨지만, 그게 엄마에겐 큰 무리가 된 것 같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엄마께서는 시름시름 앓으시는 일이 많아지셨고, 누워계시는 날이 많아지셨습니다.
    그 해 11월 병원에선 엄마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위암말기였습니다. “3개월 남았습니다.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엄마 곁에 함께 있었던 저는 담당 선생님께, “그럼 우리 엄마 죽어요? 왜요? 왜 우리 엄마가 죽는데요! 우리 엄만 나쁜 짓 안했단 말이에요! 우리 엄마가 얼마나 착한데 왜 죽어요! 제발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라고 말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이런 저의 안타까운 모습을 지켜보시던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는, “얘야 나도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단다. 미안하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너무나 미안하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이 제가 살리고 싶다고 해서 살고 죽이고 싶다고 해서 죽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가슴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느낌을 처음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엄마에겐 죽음도 쉽게 허락되질 않았습니다. 엄마의 투병 생활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암은 위는 물론이고, 장, 간, 이자, 폐 등 모든 몸속의 장기에 전이되어 손을 쓸 수조차도 없었습니다. 독한 항암치료로 인해 밤낮으로 토하고, 뼛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진통으로 데굴데굴 구르다시피 하셨습니다. 어린 자식들에게 자신이 병들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계속 저희를 떼어 내려고만 하셨습니다.
    “엄마라고 제대로 해 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면 내가 무슨 염치가 있어요.”
    이렇게 친척들에게 말씀하시며 우셨던 모습을 전 뒤에서 눈물을 삼키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희에게 정을 떼시려고 일부러 모질게 대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 해 3월 4일, 유난히도 날씨가 짓궂던 그 날, 엄마는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 전에 너무도 많은 눈물을 흘려서인지, 아님 저희 남매끼리 홀로 살아가야 할 두려움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는 눈물조차 나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저와 동생 둘 만의 생활은 그리 만만치를 못했습니다. 어쩜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12살, 9살 이 어린 두 아이들이 무엇 하나 제대로 하겠습니까? 기본적인 생활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유난히 잠이 많은 남매는 일찍 자건 늦게 자건 항상 늦잠을 자서 학교를 지각하기 일쑤였고, 잘못된 식습관으로 탈도 많이 나고, 학업은 늘 밑바닥을 헤맸습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흘러 2003년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한 기회를 얻어 어학연수를 1년 동안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소년소녀 가장 세대에게 주는 특별한 기회였지만 1년의 어학연수가 저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없는 1년 동안 동생 미영이는 한 목사님 가정에 위탁되어 생활을 했었는데, 그것을 인연으로 저도 귀국 후에 목사님 가정에 위탁되어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저는 보통 아이들과는 많이 다른 아이인 것 같습니다. 목사님 댁 자녀 어느 아이도 자기주장을 고집 부려가며 내세우는 아이가 없었는데 유독 전 제 주장이 너무나도 강하고 막무가내라 여러 사람들에게 눈물과 상처를 줬습니다.
    그런 저의 단점들을 목사님 사모님께서는 강점으로 다듬어 주셨습니다. 언제나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고, 사랑으로 감싸주시고 저를 위해 좋은 멘토들까지 붙여주시며 저를 위해 정성을 다해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 때는 어린 철부지였나 봅니다. 이런 사랑 속에서도 언제나 문제는 제가 일으켰습니다. 무뚝뚝하고 제멋대로인 말투와 이기적인 행동들로 인해 동생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습니다. 전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이 어린 동생들에겐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갔었나 봅니다.
    그러나 이런 저를, 못남투성이인 저를 놓지 않으시고, 모난 네모를 둥글둥글한 동그라미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 목사님과 사모님은 정말 많은 시간을 저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게 두세 달 정도의 시간을 거쳐 저의 마음을 안정시키신 다음엔 떨어진 성적을 다시 올리기 위해 선생님을 붙이는 등 또 다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받은 첫 성적은 반에서 40명 중에 17등이었습니다.
    정말 바닥을 헤매던 제가 다시 그만큼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다 목사님과 사모님 덕분이었습니다. 언제나 제가 기죽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제 위치를 찾게 되고, 그렇게 서서히 몸과 마음에 평화가 다시 찾길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웃기도 많이 웃고, 울기도 많이 우는 전형적인 또래 남학생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목사님과 사모님을 만난 지 4년째입니다. 중간 중간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제 뒤에 계시는 두 분으로 인해 잘 헤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위탁이 끝난 상태지만 저희 남매는 여전히 목사님 댁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두 분은 저를 친아들처럼 귀여워 해 주시고, 지금도 여전히 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십니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그 전보다 시간의 여유는 많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와 많은 대화를 나눠주십니다.
    전 『방송국 PD』라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것을 화제로 두 분께서는 언제나 많은 조언을 해주십니다. 이것저것 인간으로서 지켜나가야 할 도리 같은 것들을 지적해 주시고, 세상을 보는 눈과 따뜻하게 사람을 볼 수 있도록 늘 조언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어쩌면 제가 PD가 되고 싶어 하는 이유 또한 두 분의 영향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언제나 자식들에게 밝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시기 위해 노력하시고,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마음과 눈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시는 두 분의 영향으로 저도 방송이라는 매개체로 많은 사람들에게 밝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고 싶고, 희망찬 삶을 꿈꿀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PD라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든지 등교 시간은 이르고 하교 시간은 늦을 것입니다. 저 또한 하교 시간이 중학교 때보다 훨씬 늦어졌고, 더군다나 전 학교 독서실이 조용하다는 이유로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있다 보니 자연적으로 집에 늦게 오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저를 걱정해 주시는 두 분의 모습을 볼 때면 한 편으로는 죄송하지만 한 편으로는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나도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어, 그래서 행복해.’
    목사님 가정을 만나기 전에는 저는 이런 것들이 마냥 부럽기만 했습니다. 이런 행복이 정상적인 가정의 또래 친구들에겐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제겐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걸 극복하려고 내색하지 않고, 강한 척 했지만 기다려 주는 사람 없는 어두컴컴한 집, 암흑 그 자체의 집으로 들어갈라치면 한없이 작아지고 비참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전 행복합니다. 아주 행복합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부자라고 해서 꼭 행복하지는 않고, 가난뱅이라고 해서 꼭 불행하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가족의 사랑과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작은 것에 만족과 감사가 있다면 아무리 백만장자라고 할지라도 부럽지 않다고 말입니다. 그런 면에 있어선 전 무척이나 행복한 사람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높은 성적이 아닌 중간 정도이지만 저에 대한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제가 들어가고 싶은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하여 당당하게 제 일을 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제 모습을 두 분께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아직까지 다듬어 나가야 할 부분들이 많지만 지금까지 잘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한 눈 팔지 않고 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저는 반드시 제가 꿈꿔왔던 일이 실현될 것을 믿습니다. 물론 두 분이 제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기에 반드시 꿈을 이루어낼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너무 많은 것들을 이 세상으로부터 받아온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잘나지도 않은 제 자신이 어떻게 이 많은 사랑들을 받았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몸도 마음도 한 해 두 해 다르게 성장하는 제 모습을 볼 때면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함께 자라나는 마음 하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감사와 보답이라는 마음입니다.
    받은 것이 너무나도 많기에 또 한 번 감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린 저이기에 보답할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학생이라는 신분으로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것이 보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이 세상에 저로 인해 한 줄기 희망의 빛줄기가 비쳐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제가 받았으니 당연히 저 또한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제 마음 속 깊은 곳의 사랑까지도 그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
    가입하기: http://www.donjunda.net/index.php?love_id=shinillku
    *****(합법적인 인터넷 부업)

    *****이런 저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저는 아직 나이가 어려 취업도 곤란한 상태입니다.)
    *****MI Name is shinillku.*****
    ****신=신이 나에게 무었을 주었나 생각지 말며.
    일=일과 속에서,
    규=규율이란 울타리 안에서 남을 위해,
    초가 자신을 태우며 어둠을 밝히우는 것과 같이.
    남을 위해 헌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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