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 저널리즘의 종말’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상업주의가 창출해낸 저널리즘의 형식 객관 저널리즘이 서서히 종언을 고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대중들과 독자들은 여전히 언론의 객관성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정말 언론은 객관적이어야 할까요? 또 객관적일 수 있을까요?


물론 언론은 공정해야 합니다. 공정성은 현대 언론의 본질적 가치이자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객관적인 것이 공정한 것일까요? 또 객관적이라는 게 가능하긴 할까요?


대다수의 올드 미디어들은 ‘객관성의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객관성을 보증받기 위해 기자들은 양측의 견해를 지면에 옮겨 담습니다. 편향적이라는 비난에서 면피하기 위함입니다. 갈등적 사안에 대한 양측의 견해를 전달함으로써 편향성 시비에서 한발 비켜갑니다.


이 방식에도 한계는 존재합니다. 특정 사안에 대해 독자의 다수, 시민의 다수는 양측 견해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양극단에 동의하는 수가 더 적은 경우도 빈번합니다. 또한 그 가운데에 존재하는 견해들은 단일한 이데올로기적 일관성을 지니고 있지 않기도 합니다. 다양한 철학과 가치가 가운데의 영역에 산포해있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듯합니다.


미국의 한 저널리즘 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국 뉴스에서 객관성을 가장하여 인위적으로 극단적인 입장 간에 균형을 잡는 것은 토론을 장려하기보다는 의견을 양극화하고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한 객관성은 뉴스 사건을 대상과 상품으로 변화시키고 사건과 그것에 관한 뉴스를 소원하고 공허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객관성은 뉴스 사건을 대상과 상품으로 변화시킨다

그렇습니다. 양극단만을 보도하는 갈등 보도 뉴스는 갈등을 접합에 기여하기보다는 갈등의 확산과 간극의 극대화에 기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극단의 견해에 동조하지 못하면 마치 무지한 집단처럼 이해된다거나 해서 군중심리를 자극하죠. 여러분들도 이 같은 경험을 한 적은 없나요?


상업주의의 발화시킨 객관 저널리즘은 결과적으로 뉴스 매체와 독자 또는 시민들을 괴리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신문 구독부수의 하락을 초래했지요. 1800년대까지 이어져오던 당파 저널리즘이 붕괴하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으로 추정되는 객관 저널리즘은 100여년 동안 광고주의 입맛을 만족시키고 거대 언론을 탄생시키는 데는 공헌했지만 지금 초라한 모습으로 퇴장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최근 미국과 영국, 한국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시민저널리즘이 대안적 저널리즘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객관 저널리즘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독자들은 낯설어 합니다. “그게 어떻게 뉴스냐”라고 되묻는 질문들을 종종 듣곤 하는데요. 저널리즘과 뉴스의 정의가 대체되고 변화하는 데 따르는 성장통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객관적이지도 않고, 일반적인 뉴스의 형식인 역피라미드 방식도 따르지 않는 블로거들의 글을 보며 불편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기사에 명사도 등장하지 않고 갈등적이지도 않은데 왜 뉴스가 되느냐고 반론하는 것도 이해합니다.


이쯤에서 과연 뉴스가 뭘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중의 관심이 있는 사건을 다루며 권위 있는 명사의 코멘트가 들어있고 객관성이 담보된 역피라미드 기사가 뉴스일까요? 그것만이 뉴스일까요? 연예인의 연애담은 뉴스가 되지만 동내 노총각 노처녀의 뒤늦은 연애는 왜 뉴스가 되지 않아야 할까요?


대체 뉴스가 뭐길래?

대중의 관심을 누가 만들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명사의 관심도는 누가 생산할까요? 결국 언론이 자신의 잣대를 들이대며 만들어낸 인물(그는 곧 상품이 됩니다.), 그 인물에게 권위와 관심을 집중시키며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해온 건 아닐까요? 만들어놓고 북 치고 장구 치는 격은 아닐까요?


새로운 매체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시민들에 의해 혹은 블로거들에 의해 작동되는 매체들이 미디어의 전면에 부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객관성만을 요구하고 강조하는 게 적합한 것일까요? 다음 얘기를 들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활기차고 개입적인 뉴스는 참여를 고무시키고 촉발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공정성의 가치를 깎아내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인이 독자를 개입시켜 뉴스의 대화 속으로 끌어들이는 기사를 만드는 여러 접근이나 활동 및 시각을 실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롭 앤더슨 세인트루이스대학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


이들 시민저널리즘 매체들은 공정성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패퇴 직전에 있고 모호하기까지 한 상업적 객관주의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론 극단의 견해가 모두 담기지 않은 글이 비중 있게 배치될 때도 있습니다. 권위 있는 전문가의 코멘트가 담기지 않은 글이 높은 자리에 오르기도 합니다. 그저 하찮은 자기 경험담일 뿐인데도 중요한 위치에 걸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이들 시민저널리즘 매체가 뉴스에서 배제돼 왔던 시민들을 뉴스의 중심으로 다시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널리즘은 단지 협애한 뉴스의 정의만으로 구성되지 않습니다. 저널리즘은 소통을 의미하며 다원주의를 존중합니다. 또 그래야 하는 게 지금의 저널리즘의 역할입니다. 모든 시민과 블로거가 올드 미디어의 전통적 뉴스 형식과 가치인 객관성과 역피라미드 글쓰기를 수용할 이유는 없습니다. 또 요구받을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시민(혹은 블로거)이 직접 참여하는 언론, 시민의 사소한 일상이 주목받는 언론에서 객관성을 따져묻는 게 과연 어느 정도까지 타당한지 고민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블로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 사무실 책상입니다. 지저분하고 어지럽고. 근데 웬지 정리돼있지 않은 제 책상이 더 애착이 갑니다.


Posted by 몽양부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boramirang.tistory.com BlogIcon Boramirang 2008.03.02 2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의깊게 읽어 본 기사입니다.옳은 말씀입니다... 전적으로 동감하며...^^

  2. Favicon of http://lifedaegu.com BlogIcon JK 2008.03.02 2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저 겉햝기식으로 읽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끔 만드는 글이네요. 추천을 꾹 누르고 갑니다.

  3. Favicon of http://xtrasexux.com/sel/dirty-martini BlogIcon dirty martini 2008.05.23 0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로그를 위한 감사합니다.

  4. Favicon of http://brunettepleasurelust.com/wet/filthy-gorgeous BlogIcon filthy gorgeous 2008.05.23 0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위치는 찾아본 그것 즐겼다!

  5. Favicon of http://bloglisette.eklablog.com/ BlogIcon Terresa 2012.01.30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극 나는 후회 '다시 쓰기를 더 일반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