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고 토론하고 사랑하고

‘시민저널리즘이 기성저널리즘을 대체할 것이다‘

가끔 이런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다시금 되뇌이고 고민해봐도 이 같은 결론은 성급할 뿐이라는 걸 재확인하게 됩니다.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저널리즘 방법론으로서 양자는 꾸준히 개선의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기성저널리즘이 한계에 봉착해있는 상황이죠. 어떤 탈출구를 마련해야 하는데 여전히 관성적 동력이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신뢰를 높여 여론을 끌어들이기 위한 양자의 경쟁은 저널리즘 발전에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한국처럼 반여론적 보수일변도의 저널리즘 환경을 갖추고 있는 공간에선 양자 간의 쉼없는 생산적 경쟁이 더 치열하게 전개돼야 한다고 봅니다. 촛불시위는 양자 간의 첫 번째 경쟁이었으며, 구시대적 저널리즘 방법론을 고수한 기성언론이 분명 완패했습니다.

기자와 블로거의 본격 경쟁 시대

물론 비이슈 국면에선 기성저널리즘이 우위를 점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축적해온 경험과 정보, 인맥이 대단한 수준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시민저널리즘이 절대적 열위에 존재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많은 참여자들로부터 속속 집결되기 시작한 경험과 인맥, 노하우의 축적은 경쟁력을 더욱 높여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수확체증의 그래프와 궤를 같이 하면서 기성언론을 점점 더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성언론은 크라우드소싱이라는 방법론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에서 지속적 우위를 차지하려면 경쟁자의 잇점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죠. 다양한 삶의 체험과 정보가 녹아있는 그곳, 다시 말해 호랑이 굴을 향해 과감하게 치고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 그럼 지금부턴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시민저널리즘에 대해 발표했던 미주리 저널리즘 스쿨의 bently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페이퍼는 제가 이미 제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으니 전문은 그곳에서 참조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말하는 블로거(시민저널리즘의 주체)와 기자(전통저널리즘의 주체)의 차이는 뭘까요?

블로거와 기자의 차이는?

“다양한 측면에서 전통적인 저널리즘과 시민저널리즘의 핵심적인 차이는 ‘covering’과 ‘sharing'의 차이일 뿐이다. 기사를 써야 하는 프로기자들은 이슈에 대해 조사하고, 관련된 사람들과 얘기하고, 팩트를 체크하며 그 결과물을 스토리에 녹여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인 것이다.

시민기자나 블로거는 스토리를 중계한다. 그건 일시적인 관심도 아니고 탐사하겠다고 임무를 부여받은 무언가도 아니다. 세상를 물어뜯는다기보다는 시민기자들은 삶의 일부를 공유하는 것이다.

... 중략 ...

크라우드소싱은 쉽게 말하면 ‘블로그 항해‘이며, ’플리커 파기‘인 것이다. 새로운 저널리즘의 필수 조건은 인터넷을 매일 수억 개의 스토리가 쏟아지는 대중 와이어 서비스로 대하면 된다. 정말 신문사에 있는 와이어 에디터처럼, 새로운 기자들은 이 거대한 군중을 통해 독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콘텐트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기자의 뉴스 후각은 여전히 예전만큼 중요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벤틀리 교수도 양자 간의 관계를 적대적 대체관계, 대체제 관계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저널리즘의 질적 도약을 위한 경쟁적 동반자 관계로 본다고 해석해도 될 것입니다. 둘의 차이는 ‘취재 보도’와 ‘공유’라는 단어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요?

그리고 그의 결론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저널리즘의 미래는?

“나는 매우 훌륭한 미래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시민저널리즘이) 저널리즘을 파괴하기보다, 시민저널리즘이 기성 저널리즘을 개선하고 있다. 시민저널리즘과 전통 저널리즘의 미래는 동일하다. 딱 잘라 말하면 저널리즘일 뿐이다.”  

양자 모두 ‘저널리즘’을 향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차이란 없다고도 합니다. 벤틀리 교수는 낙관적인 편이더군요. 저 또한 낙관적으로 보는 편이죠. 지금은 으르릉 대며 싸우는 적군이지만, 앞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로 재정립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접근이 어려운 분야에 대한 정보는 프로 기자들이 던져줄 것이고, 이를 토대로 블로거, 시민기자들은 질 높은 부가 정보를 생산할 것입니다. 이는 다시 기자들에게 피드백되면서 품격 높은 분석기스를 내놓은 수순으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저는 벤틀리 교수의 견해에 일정 부분 동조하는 편인데,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둘의 관계는 대체 관계라고 보시나요? 보완관계라고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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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양부활
블로거뉴스와의 대화/the future of blog l 2008/06/2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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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ter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보는 블로거와 기자와의 결정적인 차이는 '내 글을 맘대로 쓸수 있느냐 없느냐'라고 봅니다. 특종이 잡혀도 협상이 들어오면 못나가는 것이 우리나라 언론의 현실이죠. 반면 블로거는 협상하고는 관계없이 바로 특종으로 나갈 수 가 있죠. 아마 이것도 돈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조중동이 욕을 먹는 이유도 진실보다는 돈때문에 그렇다고 봅니다.

    2008/06/29 17:22
    • BlogIcon 몽양부활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일부 블로거들 또한 돈과 진실을 맞바꾸기도 하더군요. 이 같은 아쉬운 현실과 마주할 때도 있었습니다.

      2008/06/29 18:52
  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2008/06/29 17:25
  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2008/06/29 17:25
  4. BlogIcon 머쉬룸M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읽고 한가지 질문이 있네요..
    만약 블로거뉴스에 비슷한 내용이 있는데 베스트 글에 올린다면
    시민 블로거의 글과 전문 기자 블로거 글중 어느 글을 올리시나요?

    전문기자의 글은 당연히 내용과 취재분석이 좋습니다
    일반 블로거에도 자극도 되고 도움도 있지만 블로거뉴스에 지나친 전문기자의 글은
    블로거뉴스가 전문기자들의 뉴스를 송고하는 매체인 것 같아서 어떨때는
    일반 블로거가 설 자리가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요......

    그래도 아직까지 블로거뉴스는 시민저널리즘 .......

    2008/06/29 18:06
    • BlogIcon 몽양부활  댓글주소  수정/삭제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프로 기자들 글의 장점과 단점이 있듯, 블로거의 글 또한 나름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각의 강점이 녹아든 글이 독자들에게 얼마나 더 소구력을 가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글을 쓴 주체보다는 그 글이 해당 시점에 독자들에게 어떤 후생과 만족감을 가져다주느냐가 가장 중요한 준거틀이 돼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저보다는 독자들에게 물어보면 더 정확한 대답니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어봐야 할 대상도 독자들인 듯하고요.

      2008/06/29 19:03
    • BlogIcon 머쉬룸M  댓글주소  수정/삭제

      독자는 전문적인 기사도 필요하지만 시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관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기자도 그럼 관점에 기사를 쓰지만 시민블로거는
      국민에 입장에서 더 표출되는 기사를 씁니다.
      시사적이든, 생활기사든....
      미래나 후생을 생각하기보다는 있는 현실에 있는 그대로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을 기사화 하죠
      독자는 지금 있는 사회흐름 즉 일반적인 국민의 글과
      일상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블로거뉴스가 사람들의 소리와 일상적인 정보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블로거뉴스를 열심히 보는 것 처럼 블로거뉴스도
      많은 뉴스를 보는 사람을 위해 정확한 뉴스매체가
      되길 바랍니다
      독자요?
      조사를 해 봤습니까? 과연 누구의 기사를....
      그리고 제 댓글 답변은?
      정확하지 않네요....

      2008/06/30 19:29
  5. BlogIcon 꾸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쓴 내용 있어서 트랙백걸고 갑니다. 좋은글 읽고 갑니다 수고하세요

    2008/06/29 18:46
  6. 윤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종 사회고발성 기사를 쓰곤 하는데요, 그 기사의 여파로 인한 블로거와 미디어다음의 후속대책, 이런게 좀 약한거 같습니다. 그렇다보니 일반 블로거들의 사회 고발성 기사가 올라와도 처리하는데 편집부에서 쉬운것 같지는 않더군요. 어떠한 검증시스템도 정확히 없는 상태고... 반면 기존 전문 기자 블로거들의 사회 고발성 혹은 민감성 글은 처리가 매끄럽게 잘 되는 것 같구요..제가 느끼는 블로거와 기자의 차이라고 할까요? 이거, 제가 써놓고도 뭐가 뭔지 헷갈리네요 허걱~~~

    2008/06/29 20:03
  7. BlogIcon tvbodaga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블로그코리아 필로스님이 블로그에 적은글이 생각나요. 교통사고가 난 현장을 보았을때 119에 전화를 걸고 다친 사람이 있으면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고 사진을 찍고 6하 원칙이 들어간 기사글을 생각하며 특종이라 생각하면 당신은 더이상 사람이 아닌 기자라고.

    블로거는 기자보다 더 사람냄새가 나야 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2008/06/29 21:25
  8. asial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이점의 첫번째는 목적, 두번째는 권위.. 이 차이가 아닐까 하네요...

    목적이란것은.. 기자는 항상 기사의 소비자를 염두해두고 기사를 작성하지만.. 블로거는 그렇치않죠.. 블로거의 글에는 꼭 독자가 있어야 하는것도 아니고, 기자차럼 기사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것도아니고....

    권위라는 것은.. 프로페셔널리즘이 있느냐 아니냐라는 겁니다. 기자는 기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니 만큼 권위가 있고 또 그 권위를 뒷받침하도록 충분한 노력과 책임을 기울이지요... 근데.. 블로거는 일단 프로는 아닙니다. 권위로부터 자유롭지요.. 이건 장점도 되지만 단점도 된다고 봅니다. 책임이 없으니 다양한 시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해서 재미도 있고 굉장히 빠르지요.. 동시에 책임감이 없으니 신뢰성이 떨어지고 주관화된 글이 올라오지요..
    뭐 대충 이런거 아닐까요?

    2008/06/29 22:54
  9. 차이는 단순함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들은 돈때문에 기사를 쓰고
    블로거는 양심떄문에 기사를 쓴다

    2008/06/30 00:56
  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2008/07/06 18:36
    • BlogIcon 몽양부활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지금 방명록은 머쉬룸M님만 못 쓰는 게 아니라 저도 쓸 수 없는 상태랍니다. 사이드바에 붙여놓은 위젯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아마 제거하면 정상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겠네요. 오해 없으셨으면 합니다.

      그럼.

      2008/07/08 11:10
  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2008/07/13 20:07

미디어의 발전은 민주주의의 이행, 공고화 과정과 궤를 같이 합니다. 이미 누차례 강조한 바 있는 웹2.0은 웹계 혹은 미디어계의 민주화라는 대승적 조류를 설명하는 용어로 점차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웹2.0의 철학을 대변하는 참여, 공유, 개방은 21세기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핵심적인 키워드임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최근 미 쇠고기 반대 국면은 미디어 민주화 이행을 촉발시키는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기술적 마케팅적 용어로 전문가들에게서만 통용됐던 웹2.0은 이제 미디어의 민주화라는 그 자체의 존재 목적으로 급속히 질주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수용자들은 웹2.0이라는 용어를 인지하건 하지 않건 간에 그 플랫폼의 참여 가능성, 공유 가능성, 개방성 등을 저울질하다 1차 종착점을 발견하게 된 것이죠. 그곳이 다음 아고라였고 블로그였습니다.

통 상 기술 혁신으로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했을 때 해당 기술이 대중들로부터 수용되기까지는 수십년이 걸립니다. 하지만 이를 앞당기는 모멘텀이 발생했을 때 수용 속도는 상당히 빨라지는 경향을 나타냅니다. 모멘텀에 따라 새로운 기술의 존멸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이 미 봐왔듯이 웹2.0의 철학이 내재된 서비스가 우후죽순처럼 등장했지만, 좀처럼 대중화되는 단계로 이행되지는 못했습니다. 기술의 공급자와 수용자 간의 괴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죠. 기술적 혁신을 체화시키고 학습할 만한 동기와 이슈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미 쇠고기 파동은 1인 미디어 대중화의 모멘텀

이 번 미 쇠고기 파동은 ‘1인 미디어‘의 이 같은 동기와 모멘텀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미디어 민주화에 작지 않은 획을 그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Digg이라는 혁신적 북마킹 서비스가 대중적 소셜 미디어로 자리잡는 데에 패리스 힐튼의 핸드폰 사건이 기여를 했듯, 그리고 오마이뉴스라는 시민참여저널리즘 매체가 대중적 도구로 인식되는데 대선과 노무현이 공헌을 했듯, 미 쇠고기 파동은 1인 미디어의 대중화에 상당한 공을 세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 서 여러 차례 언급한 미디어의 민주화, 혹은 미디어 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미디어 권력의 분산과 미디어 권력의 공유를 지향합니다. 일부 형태의 매체, 일부 언론사에 집중되고 독점돼 있던 미디어 권력이 미디어의 수용자이자 주체인 시민에게 분산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대 다수 미디어 전문가들이 강조하고 있다시피, 이번 미 쇠고기 파동은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독점적 미디어 권력과 1인 미디어 간의 적대적 대결이었습니다. 싸움에서 1인 미디어가 승리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미디어 권력의 분산이 앞으로 이행단계에 접어들 수 있음을 상징합니다.

정치학자는 오도넬은 민주주의의 이행과정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 바 있습니다.

자유화 -> 민주화 -> 사회화

이 를 미디어계에 적용시켜 보면, 웹2.0은 미디어의 자유화 단계에서 미디어의 민주화 단계로 이행시키는 촉매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간 기술적 장벽에 막혀 미디어 수용자들은 참여하기를 망설였죠. 이 장벽을 미 쇠고기 파동이 붕괴시켰습니다.

조희연 교수는 ‘민주주의의 사회화‘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권력을 분산하고 권력의 독점화, 집중화에 반대하면서 권력의 분점, 탈독점을 지향하는 것이다.”

미디어 권력의 분산 탄력 받을까

정 치, 자본 권력의 유착으로 독점적 여론 권력을 행사해왔던 미디어의 시대는 점차 한계를 노정하고 있습니다. 여론을 왜곡해 제도적 민주주의를 정체시킨 독점적 언론 권력들의 시대는 미디어 수용자로부터 신뢰를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1인 미디어 시대의 도래, 풀뿌리 저널리즘 또는 시민저널리즘 시대의 도래는 미디어 권력의 분산을 의미하는 동시에 미디어계 전반의 신뢰를 회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 렇다고 낙관하기는 이릅니다. 독점적 미디어권력, 독점적 정치권력, 독점적 자본권력 삼각 카르텔은 아직 강고한 파워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나타난 민주적 동력이 온라인에서도 위력을 발휘하려면 1차적으로 1인 미디어의 대중적 확산이 전제돼야 합니다. 그리고 대중적 활용 정도도 높아져야 합니다. 미디어 민주주의 시대가 막을 올렸다고 해서 곧바로 안정화, 공고화단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얘기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민 주주의 이행론, 공고화론을 서술한 정치학자들은 최소한 선거가 2회 이상 왜곡 없이 시행될 때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진행되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미디어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첨예한 이슈가 발생했을 때 시민들이 1인 미디어를 주력 도구로 몇 차례 더 활용해야만 미디어의 민주주의가 이행과정에 있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 리나라처럼 미디어의 권력집중이 과잉된 사회에서는 미디어계의 민주화가 사회적으로도 시급한 과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파동으로 잠재력을 인정받고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해서 항상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미디어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더 대중화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p.s.
고 무적인 것은 1인 미디어를 통한 여론의 생산 및 확산 의지가 새로운 기술에 대한 낯설음을 뛰어넘으면서 미디어 수용자들이 한층도 기술 포용적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입니다. 기술 공급자의 홍보나 마케팅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디어 수용자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학습에 의한 결과여서 긍정적입니다. 이러한 학습을 통해 확보된 동력은 앞으로 1인 미디어의 대중화에 가속도를 붙여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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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양부활
뉴미디어 소식/뉴미디어와 민주주의 l 2008/06/08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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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doimoi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에 집회 나갔는데... 예전에는 대학교 깃말과 노동조합 깃말로 대표 될 수 있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깃말을 들고 나왔는데.. 가장 많이 보이고, 가장 중심축 역활을 하는 깃말들은 모두 다음 아고라 깃말이더군요...

    세상이 뭔가 변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8/06/09 12:52

다시 하버마스를 거론하고자 합니다. 그가 그토록 갈망하는 ‘부르주아 공론장’이 과연 블로그세상에서 복원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려 합니다. 읽고 또 읽어도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하버마스가 바라는 그 부르주아 공론장의 원형에 가깝게는 말이죠.

하버마스는 TV와 같은 미디어가 공론장을 파괴했다고 설명합니다.

“뉴미디어들이 방송하는 프로그램들은 인쇄된 전달방식과는 달리 수신인들의 반응을 독특하게 제거한다. 그것들은 공중을 시청자로서 자신의 궤도로 끌어당기는 동시에 공중으로부터 성숙의 거리, 즉 말하고 반론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하버마스가 말하는 ‘성숙’이라는 개념은 문화적 교양과 연결됩니다. 17~18세기 부르주아 문예 공론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예적 토론(살롱이나 카페 등에서 이뤄졌던)이 TV를 통해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만약 TV 방영물이 책 토론, 교양프로그램으로 채워졌다면 하버마스의 생각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상업화된 언론, 공론장을 파괴하다

하지만 기성 신문과 TV 매체는 외면했습니다. 자본주의 언론의 한계 때문이지요. 객관적 저널리즘이라는 메인스트림 그리고 AP가 개발한 역피라미드 기사의 역사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 19세기 이후 언론은 상업적 이윤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이에 대해 하버마스도 매우 비판적입니다.

“편집자의 입장 표명은 통신사 보도와 특파원 보고의 뒤로 후퇴한다. 비판적 논의는 소재의 선택과 제시에 관한 내적 결정의 장막 뒤로 사라진다. 이로써 정치기사나 정치와 관련된 기사의 비율이 변화한다.

공공사안, 사회문제, 경제문제, 교육, 보건, 즉 미국 저자들의 분류에 따르면 바로 보상지연 뉴스(delayed reward news)는 풍자, 부패, 사고, 재해, 스포츠, 레크리에이션, 사회적 사건, 인간적 흥미와 같은 즉각적 보상뉴스(immediate reward news)에 의해 밀려날 뿐만 아니라 이미 이러한 특징적 지칭에서 드러나듯이 실제로 적고 드물게 읽힌다.”

공중의 문화적 수준을 높이고 계몽하는데 몰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중문화의 소비자로 전락시킴으로써 공론장이 파괴됐다는 것이 하버마스의 결론입니다. 저널리즘이 그에 한 몫을 담당했고요.

하버마스는 부르주아 지식인, 교양인과 같은 엘리트에 호소를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대중문화에 젖어 문화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대중들을 위해 격조 높은 독서토론을 이끌어달라고 외치는 듯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독서토론이 대중에게 전파될 수 있도록 애써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대중문화 소비자로 전락한 공중, 블로거는 다를까?

하버마스의 요청을 블로그 세상은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을까요? 아직은 어렵다고 봅니다. 단적으로 대다수의 블로거는 토론할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토론의 기법을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MB가 싫다는 목소리를 넘쳐나지만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따져가며 MB 정책의 모순을 짚어내는 블로거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MB 측의 정교한 논박에 금방이라도 사르르 무너져내릴 듯 사상누각과 같은 글들을 넘쳐납니다.

하버마스가 바라는 공론장은 이런 것입니다.

“18세기에 부르주아 독서공중은 친밀한 서신왕래 및 여기서 발전된 심리소설과 단편소설 문학에 대한 독서를 통해 문학능력을 갖춘 공중과 관계된 주체성을 배양할 수 있었다.“

정치적 공론장의 전 단계인 문예적 공론장이 갖춰지려면 최소한 이와 같은 학습과 문화적 교양의 배양과정이 필요합니다. 과연 블로그 세상은 이러한 학습장의 기능을 하고 있을까요? 오프라인 불만족의 배설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공론장 복원을 위한 블로그 세상의 조건은?

어쩌면 하버마스는 블로그 세상의 가능성을 확인받으려면 허동현-박노자 서신논쟁급의 토론이 블로그 세상에서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블로그의 증가가 도서 판매량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상관관계가 또렷해져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이와 함께 대중의 교양수준도 함께 증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내야 한다고 덧붙일지도 모릅니다.

블로그 세상에서 격조 높은 토론이 이뤄지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요? 지식인들이 더 많이 블로그 세상으로 옮겨와야 가능할까요? 아니면 일반 블로그들의 지적 교양의 수준이 높아지길 바라는 수밖에 없을까요? 같이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p.s.

하버마스의 공론장에 '대중의 지혜'가 어디에 어떻게 위치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하버마스는 대중의 지혜를 신뢰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더군요. 문득 레닌이 노동자집단은 무지하고 이기적인 존재라고 한 말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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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양부활
뉴미디어 소식/뉴미디어와 민주주의 l 2008/04/2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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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여울바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론장, 그리고 블로그에 대한 논의 잘 읽었습니다. :)
    저는 '뉴미디어 기술'은 '기회'를 제공할 뿐, 그 기회를 가져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론자의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지금, '블로거'는 누구인지, 네티즌은 누구인지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표현하는지 고민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인터넷은 TV 못지 않은 '즉각적 반응'을 추구하는 매체이기도 하구요.

    '공론적인 성격이 짙은 화두'에 대해 블로그라는 온라인 세계에서 논의될 수 있는지
    독서와 사고 그리고 토론에 대해 '오프라인'에서 활발히 공론화 시킬 수 있는지
    가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라고 봐요.

    집단지성의 가능성과 비관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에서,
    단순히 '엘리트'만의 '공론장'이라거나
    대중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공론장'은
    가능성이 없다고 봅니다.

    음..
    조금 더 블로거 혹은 네티즌들이 '공론장'의 성격에서 토론하기 위해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유기적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오프라인의 '문화 소비 양식'이 그대로, 온라인에게도 비슷하게 미치니까요..

    2008/04/22 21:14
    • BlogIcon 몽양부활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문제는 말씀하셨다시피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유기적 변화인데, 그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답을 내놓기 쉽지 않다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공론장의 복원을 위해 엘리트가 선두에 나서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게 좋은 것인지, 대중의 지혜에 기대면서 공론장 복원을 기다리는 게 좋은 것인지 솔직히 어려운 문제네요.

      말씀 감사했습니다.

      2008/04/23 12:43

“달랑 그것만 쓰고도 뉴스냐” “블로그는 객관적이지 않다”

블로그를 읽는 독자들이 제기하는 불만들입니다. 전통 언론사들이 생산하는 기사들에 익숙한 독자들은 심층성이 부족한 블로그 포스트를 보고 이런 비판을 가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블로그는 신뢰할 수 없다”라며 배척합니다. 맞습니다. 그것이 블로그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하지만 저도 불만이 있습니다. 블로그와 언론사의 기사를 왜 동일한 시각으로 접근하려 하느냐고 항변하고 싶습니다. 뉴스를 전달하는 방식의 차이, 신뢰를 획득하기 위한 접근 경로의 차이를 인정해주면 안되느냐고 감히 변론하고 싶습니다.

뉴스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리고 뉴스의 정의가 만고불변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서 다음과 결론을 내렸습니다.

'뉴스는 완결된 것이 아니라 완성되는 것이다'

일반 언론사의 기자들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완결된 기사를 작성할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기사 그 한 꼭지만으로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취재에 임하죠. 하지만 한정된 지면, 한정된 원고 매수 안에서 다양한 견해를 다루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특히 갈등적 사안을 기사화할 경우 더더욱 어렵죠. 형식적으로 객관성을 지향할 뿐입니다. 전문가의 코멘트를 인용하거나 통계수치를 제시하면서 말이죠. 그렇다고 신뢰가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과 친분이 있거나 생각이 비슷한 부류의 전문가들, 자신의 논리 전개에 유리한 통계치들만 취사선택해 적시하는 습관 때문입니다. 신문이 신뢰의 하락에 직면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반면 인터넷 언론은 형식적으로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지면 제약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전통 언론의 관행은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인터넷 언론이 신뢰 있는 언론으로 지속적으로 추앙받지 못하는 건, 인터넷과는 이질적인 전통 언론의 기사 작법과 관행이 인입돼 왔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사 오류에 대한 수정이 즉각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닙니다. 적어도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사에 대한 오보나 정정이 재빨리, 폭넓게 이뤄져야 하지만 언론인들은 매우 인색합니다. 잘못된 정보를 수정하지 않으니 피해자는 계속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죠.

블로그는 그 자체로 완결된 기사는 아닙니다. 독자들의 댓글과 트랙백에 의해서 완성되는 기사인 셈이죠. 블로그를 읽는 행위는 블로거가 쓴 글만 읽는 것이 아니라 해당 포스트가 놓치고 있는 다른 정보들과 견해들을 담을 댓글, 트랙백까지 읽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쌍방향소통 툴인 블로그를 이해하는 첫 번째 조건이라고 봅니다.

블로거들은 쌍뱡향적 대화를 통해 기사의 오류를 수정함으로써 더 완성도 높은 기사로 만들어갑니다. 오보 정정이나 수정도 기존 언론사의 기사보다 너그럽고 빠릅니다. 새로운 사실을 보충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독자들은 과연 누 매체 중 앞으로 어느 쪽으로 더 신뢰하게 될까요? 물론 언론이 그간의 관행을 버리고 오보나 정정에 관대해진다면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몇 가지 부가할 사항은 추후에 보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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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양부활
블로거뉴스와의 대화/the future of blog l 2008/04/0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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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용감한티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로그는 댓글과 트랙백들이 소통하면서 완성되다!!!
    이리 이해하면 되는지요?? ^^;

    블로그를 시작한지 이제 한달도 채 되지 않아,
    여러 혼돈이 있는 제게 큰 도움이 되는글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2008/04/06 17:55
  2. BlogIcon art erotic print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유용한 정보!

    2008/05/23 04:43

“뉴스는 그날 일어난 사건에 대한 단순한 보고가 아니다. 이러한 사건은 신문의 재활용 과정으로 넘어가자마자 곧바로 그 의미가 약화되고 상실된다. 오히려 뉴스는 여러 세계에 걸쳐 진행된 내러티브와 이야기 과정의 일부인데, 이러한 과정은 모든 시대와 장소의 사람들을 상호 간에 그리고 그들의 환경과 연결시켜준다.”(<저널리즘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만드는가>)


뉴스의 역사는 내러티브와 이야기 저널리즘의 역사였습니다. 저널리즘 역사에서 100여년간 존속해온 역피라미드 기사 형태의 사실 중심적 저널리즘은 결과적으로 신뢰의 하락을 불러왔습니다. 상업주의 저널리즘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죠. 오늘날 ‘신문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임과 동시에 ‘사실 보도 저널리즘의 위기’, ‘역피라미드 기사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블 로그는 어떨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블로그 저널리즘의 발화는 내러티브 중심 저널리즘의 복원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중심 저널리즘에 묻혀있던 공동체성, 민중성 등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도록 추동하는 툴이 바로 블로그라고 본다는 얘기죠. 역피라미드 기사에 담지 못했던, 사실 중심 저널리즘에서 주변화됐던 소재와 인물이 다시 저널리즘의 중심으로 옮겨지고 있음을 저는 발견하게 됩니다.

하 루에 수십 건의 포스트를 읽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역피라미드 형식으로 써내려간 글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기자 블로거들조차 자신의 블로그에서만큼은 이야기체로 글을 전개합니다. 적극적으로 내러티브 형식을 도입하고 있는 블로거들도 적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왜 블로거는 역피라미드로 쓰지 않을까?

기 사체, 사실 중심적 글쓰기를 고집하는 블로거들의 블로그엔 댓글이 많이 붙지 않습니다. 문체에 따라 글을 전개하는 방식에 따라 소통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직접 목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피라미드는 그 자체로 소통 폐쇄적입니다. “음 그렇군”이라는 반응 외엔 울림을 생성해내지 못합니다. 소통와 네트워크의 미디어인 블로그와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이죠.

얼 마전 ‘스트레이트를 넘어 내러티브로’(안수찬 기자)라는 연구보고서가 출간됐습니다. 안 기자는 “역피라미드 스트레이트라는 기사 장르가 한국 기자들에게 덧씌운 족쇄가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며 “이를 풀어낼 열쇠는 논픽션 내러티브에 있다는 믿음도 강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겠습니다. 저는 한국형 이야기 기사의 주류화를 견인하는 주체가 지금은 언론사 기자가 아니라 블로거라고 생각합니다. 내러티브형 뉴스의 복원과 부활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바로 블로그에 있다는 얘기입니다.

“보도는 사회적으로 배타적인데 반해 이야기는 포용적이다.”


그 렇습니다. 내러티브형(혹은 이야기형) 뉴스의 특장은 ‘대중 포용성’입니다. 내러티브형(혹은 이야기형)는 갈등을 구체적이고 폭넓게 묘사하고 사건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적합한 방식입니다. 정보 이상의 뉴스를 전달하는 데 이야기만큼 효율적인 전개 방식은 발견하기 힘듭니다. 그 핵심에 블로그가 존재합니다. ‘장르적 패러다임 쉬프트’에 블로거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지요.

블로그는 이야기 기사를 복원하고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데 앞으로도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지금은 블로그가 지닌 저널리즘 전환의 가능성에 대해 인식 강도가 낮은 편이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변화할 것이라고 봅니다.

p.s. 블로그의 등장과 내러티브 시대로의 복귀는 이성, 객관, 사실로 대변되는 근대성의 위기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지 않을까요? 비약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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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양부활
블로거뉴스와의 대화/the future of blog l 2008/03/13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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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희휘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어요! 제가 좀 어려워하는 단어들이 많았지만요-_ㅠ;;

    2008/03/13 15:59
    • BlogIcon 몽양부활  댓글주소  수정/삭제

      죄송합니다. 어려운 단어를 쓰려고 쓴 것이 아닌데. 이런 논의를 해보고 싶다는 의미에서 한번 끄적여본 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03/13 21:26
  2. BlogIcon italian hotties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위치는 아니라 유익한뿐 재미있는다!

    2008/05/23 04:17

‘객관 저널리즘의 종말’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상업주의가 창출해낸 저널리즘의 형식 객관 저널리즘이 서서히 종언을 고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대다수